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공식 인정하라고 행정부에 요구했다. 미국 정치권이 이스라엘 핵무기 여부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행정부 내에서도 이란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져, 미국이 반세기 이상 유지해온 이스라엘 핵무기에 대한 묵과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호아킨 카스트로 등 민주당 의원 30명은 4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침묵하는 것은 이란 전쟁과 군사적 격화의 심각한 위협 속에서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5일 보도했다. 의원들은 “이 환경에서 오판, 격화, 핵 사용의 위험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라며 “의회는 중동의 핵 균형, 어느 쪽에 의한 것이든 이 분쟁이 격화할 위험성, 그리고 행정부의 계획과 비상 대비책에 대해 충분히 보고받을 헌법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195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시작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나, 이스라엘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핵무기 사용 가능 조건에 관한 어떠한 교리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아 왔다.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핵을 둘러싼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에서도 공유되고 있으며, 이들은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레드라인(금지선)’이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 핵무기에 관한 비밀 유지 정책을 고수해 왔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상황이 이스라엘의 핵 대응을 촉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그 기준점이 미국 정부가 전에 평가했던 것보다 낮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행정부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핵 프로그램과, (이스라엘이)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당하지 않고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에 대한 은근한 불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여부와 관련해 주목받는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의 방공망이 인근 국가들로부터의 미사일이나 로켓 공격에 압도되는 상황이다. 한 행정부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민간인 사상자를 마주했을 때 핵 대응에 나설지 여부가 “빈번히”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란 전쟁에서 이란의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주요 핵 연구 시설 인근인 디모나와 아라드를 타격했다. 이 공격이 방사능 누출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방공망의 한계를 드러냈다.
의원들은 이 서한에서 미국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려 하면서도 이웃 국가인 이스라엘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제 미국의 신뢰성을 약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의 핵심 당사자의 핵무기 능력에 대해 공식적으로 침묵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한 일관된 중동 비확산 정책을 전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한에서 의원들은 이스라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역사적 공식 문서들을 근거로 제시했다. 1974년 기밀해제된 특별국가정보평가서(SNIE)는 이스라엘이 이미 핵무기를 생산했다고 결론 내렸고, 2006년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 후보자는 상원 청문회 선서 증언에서 이란 주변의 핵무장 국가로 이스라엘을 파키스탄·러시아와 나란히 열거했다.
의원들은 이스라엘이 미국에 핵 독트린이나 레드라인을 전달한 적이 있는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은 바 있는지 등 11가지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오는 18일까지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국무부는 현재까지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역사학자 에브너 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침묵 정책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골다 메이르 이스라엘 총리 사이의 비공식 합의에서 비롯됐다. 이 합의를 통해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 모호성 정책을 수용해서 이스라엘을 국제적 비판으로부터 보호해줬다. 코언은 “이스라엘이 수십 년간 이 정책을 혼자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의 공모를 짚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 서한은 당내에서 커지는 이스라엘 비판 여론을 반영한다. 지난 4월 상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이전을 차단하는 결의안 투표 때 민주당 상원의원 40명이 찬성했다. 이례적으로 많은 찬성표가 나온 것이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민주당원의 80%가 이제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22년의 53%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번 서한을 주도한 카스트로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답변을 받으면 공개할 계획이라며 특히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 여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것은 세계에 비밀로 유지되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