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당국이 크렘린의 선거 조작을 비판해온 정치학자 알렉산드르 키네프(51)를 ‘마약 밀매’ 혐의로 감옥에 가뒀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반대한 혐의로 투옥된 정치범이 5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르몽드와 데페아(dpa) 통신은 25일(현지시각) 키네프의 변호사를 인용해, 모스크바 지방법원이 최근 “대규모 마약 불법 제조·판매 또는 운송 혐의”로 키네프의 구속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수사와 재판을 받는 2개월 동안 미결구금된다. 키네프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상황이다.
키네프는 러시아의 선거 제도를 연구해온 정치학자다. 2019년까지 모스크바 고등경제대 응용정치학과 부교수를 지냈고, 러시아에서 금지된 선거감시 비영리단체(NGO) ‘골로스’에서도 활동했다. 특히 지난 18∼20일 치러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총선을 두고 ‘결과가 조작됐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아왔다. 그는 최근 약 2만명이 구독하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이번 총선의 실제 투표율이 40% 안팎에 그쳤지만, 당국이 이를 60%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전국 9만1000개 투표소 중 통합러시아 추천 인물 등이 아닌 독립적인 참관인이 배치된 곳은 2000곳에 그쳤다고도 고발했다.
야권 인사들은 크렘린이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 마약 혐의를 씌웠다고 반발한다. 앞서 러시아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그를 ‘외국 대리인’ 명단에 올리고 활동을 감시해왔다. 외국 대리인은 국외 자금을 지원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 또는 단체다. 키네프의 동료 정치학자 콘스탄틴 칼라체프는 텔레그램에서 “나는 그를 어떤 마약 혐의와도 연관 지을 수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닥칠 수 있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썼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수사기관이 반체제 인사의 가방 등에 마약을 넣어둔 뒤 마약 혐의로 잡아들이는 일이 흔하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반체제 언론인 이반 골루노프가 지난 2019년 이런 방식으로 기소됐다가, 항의 시위 끝에 석방된 바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당국의 여론 통제가 심해지면서 이 나라에서는 5천여명의 정치범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총선을 두고는 강압적인 투표 방식 등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러시아 선거에서는 전자 투표와 수기 투표가 병행되는데, 전자 투표 장면은 카메라로 녹화돼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청한 언론인은 르몽드에 “모스크바 한 투표소에선 유권자들이 선택의 여지 없이 전자투표 기기로 안내됐다. ‘투표 시작’ 버튼을 누르면 (정부 쪽)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형 화면으로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알렸다.
종이 투표 역시 관권선거 의혹이 따랐다. 러시아 중부 페름의 독립언론 ‘페름 36.6’의 한 기자는 사흘간의 선거 기간 동안 선관위원들이 야간에 장갑 낀 손으로 투표함을 손대거나 투표용지를 바꾸는 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인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주 등에서는 러시아 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자택에서 투표하게 해주겠다”며 선거 기간 전부터 사전 투표를 받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군인을 대동한 채 투명한 투표함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영상이 돈다.
중앙선관위가 25일 발표한 공식 선거 결과를 보면 통합러시아는 51.8%를 득표해 450석 중 349석을 차지했다. 역대 선거에서 이 당이 얻은 의석 중 가장 많았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정권 기조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야블로코’(러시아어로 사과) 등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피선거권이 박탈돼 출마하지 못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이번 선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이었지만, 크렘린이 정치적 경쟁과 대안을 뿌리째 제거했다. (여당이 압승하는)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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