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양대 강국의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처지를 대변한 셈이다.
리 총리는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서로 다른 쪽에 있는 두 나라와 친구라면 어떨 때는 둘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지만 어떨 때는 둘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지만 아세안이 한쪽을 택해야 하는 환경이 올 수 있다. 그것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 총리의 발언은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는 아세안의 ‘헤징 외교’ 전략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고민을 표현한 것이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에는 미국에 가까운 싱가포르·필리핀, 중국과 가까운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가 있다. 그러나 아세안 전체로는 한쪽에만 기대지 않으면서 집단적 이익을 도모해왔다.
리 총리의 발언은 회원국들의 영토 문제가 걸린 남중국해를 놓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나왔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6일 “남중국해는 어느 한 나라 소유가 아니다.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고 국가 이익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계속 항해와 비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미-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제국과 침략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의 인도·태평양 비전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중국을 겨냥했다.
이번 회의에서 아세안 정상들은 남중국해의 긴장 억제를 주문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우리는 남중국해에서 긴장을 높이지 않는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며 “이는 군함을 불러들여 항행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앞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중국해는 지금 중국의 수중에 있는데 왜 마찰을 빚느냐. 군사 행동은 중국의 반응을 불러올 것”이라며 중국을 두둔했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 쪽과 함께 아세안 정상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이어 17~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그의 발언은 이 지역의 협력을 도모하는 회의체들이 점점 미-중 대결의 장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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