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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한 선박 공격 범위를 카리브해에서 태평양으로 넓혔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자는 34명으로 늘어났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2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군이 마약을 운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에 대한 공습을 개시해 동태평양 해역에서 두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마약 운반 선박이라고 주장하며 벌인 여덟번째 공격으로 지금까지 최소 34명이 사망했다.

이번 미군의 태평양 해역 공습은 지금까지 카리브해 선박만 겨냥했던 앞선 7차례 공격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군사 공격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주요 마약 경유지이지만, 실제로 코카인의 주요 밀수는 카리브해가 아닌 동태평양에서 이뤄진다. 동태평양에 해안선을 두고 있는 콜롬비아와 페루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이고, 그 사이에 있는 에콰도르는 마약 밀매 업자들이 제품을 운반하는 주요 경로가 되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공격을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과도 비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알카에다가 우리 본토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것처럼, 이 카르텔들은 우리 국경과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피난처도 용서도 없을 것이며 오직 정의만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정보당국이 해당 선박이 불법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힐뿐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 선박들이 마약 운반 선박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선박을 나포해 조사를 벌여야지, 폭격을 해 사람을 숨지게 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많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해상 선박 공격 합리화를 위해 미국이 마약 카르텔과 “무력 충돌”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조지 더블유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법적 권한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고 에이피는 지적했다. 최근 선박 공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육지에도 유사한 공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주 카리브해에서 진행된 마약 선박 공격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선원은 각 본국인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로 송환됐다. 에콰도르인은 마약 밀매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본국에서 석방됐다. 에이피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에 대한 미국 내 기소를 회피했다”며 이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군사작전의 합헌 여부와 관련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 승인이나 세부 사항 공개 없이 군사 공격을 이어가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리처드 블루멘탈 민주당 의원은 “지리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정당성 없는 미군의 무법 상태와 무모함을 확대하는 것일뿐”이라며 “마약 밀매를 단속하는 것은 배를 멈추고 배에 탄 사람들을 심문해 마약의 출처를 찾아내는 것이지, 밀수 사슬의 맨 밑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선원들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이후 통과된 ‘전쟁 권한 결의안’(1973년)은 의회가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을 시 대통령이 의원들과 협력해 군대를 배치해야 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 권한 결의안은 대통령이 “가능한 모든 경우”에 “미군을 투입하기 전 의회와 협의”할 것을 촉구한다.

앞서 민주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실시된 적대 행위에서 미군의 철수를 지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냈지만, 이달 초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부결됐다.

한편,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디시(D.C)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육상으로 마약을 밀수하는 카르텔을 타격하기 위해 의회에 권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