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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 전문가들이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 산업의 대중국 전략과 협력 방향’ 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다. 박종오 기자
국내 산업 전문가들이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 산업의 대중국 전략과 협력 방향’ 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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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내부 보고서를 쓸 땐 업종별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몇 년 남았는지를 꼭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보고서를 쓰기 어려워졌어요.”

김덕구 산업통상부 동북아통상과장이 이같이 털어놨다. 중국의 제조업과 첨단 산업이 급성장하며 과거와는 판도가 180도로 달라졌다는 얘기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전환기 한국 산업의 대중국 전략과 새로운 협력 방향’ 포럼을 열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턱밑까지 추격했거나 이미 넘어선 중국에 대응할 우리만의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김 과장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기존 중후장대 제조업뿐 아니라, 자율주행 전기차·배터리·인공지능(AI)·로봇·재생 에너지 등 미래 산업 전반에서 한국을 추월하고 있는 중국의 위협에 공감하며 우리 산업 전략에도 변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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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공산당은 제조업 육성에 진심”이라며 “한국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성장 모델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제조업 공장을 외국으로 대거 이전했다가 일자리 감소 등으로 정치·사회 불안을 겪고 있는 미국 사례를 교훈 삼아, 자국의 제조업을 전방위로 밀어주며 글로벌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 위원은 “신산업·신시장 업종은 중국이 개발과 시장화, 양산, 판매 모두를 자체적으로 소화해 외국의 후발기업에게 추격의 기회가 없다”고 짚었다. 전기차·배터리·재생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의 경우 중국이 전체 밸류체인(제조업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까닭에 후발 주자인 한국이 치고 들어갈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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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학 국민대 교수(중국학)는 “중국이 ‘제조 2025’를 기획한 2015년은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다시 제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서며 중국의 조바심이 컸던 시기”라며 “10여년간의 산업 고도화와 과학기술 발전 전략으로 한국이 많이 따라잡히며 상당히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제조 2025’란 중국 정부가 제조업 강국을 목표로 2015년 발표한 국가 주도의 장기 산업 정책이다. 반도체 ·인공지능·로봇·전기차 등을 10대 전략 산업으로 정해 집중 지원했다.

홍창표 코트라 아카데미 원장은 “2015년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협상을 하던 시기로, 당시만 해도 에스(S)전자가 중국과의 ‘초격차’를 말하며 ‘전혀 문제 없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었다”면서 “중국이 무서운 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밸류체인을 내재화한다는 점이며 한국의 반도체도 언제까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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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전문가인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 등 국내 기업의 중국 현지 법인 얘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경쟁할지 답이 없다’고 한다”며 “현대차가 올해 중국에서 개발한 전기차인 ‘일렉시오’도 판매 성적이 안 좋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까지 중국 칭화대의 반도체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던 이우근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는 요즘 너무 반도체와 인공지능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미·중 등 정보기술(IT) 강국처럼 기초과학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르파는 미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으로 국가 안보 목적의 혁신 기술을 주도적으로 연구·개발해 민간 확산을 유도한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중국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내부 고민도 함께 파악하며 정교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종철 산업통상부 통상협력국장은 “최근 5년여간 중국에 대한 관심을 등한시했던 게 현재의 상황을 초래했다”며 “(중국 사업·교류 축소 등으로) 한동안 기업 회장과 최고경영자(CEO)에겐 중국 사업 관련 보고를 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논의를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