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4학년 김우진은 ‘000간’에 동생들을 데리고 와 핸드폰 게임도 하고 한참이나 놀다 간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그냥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물을 마시려고 이곳을 찾기도 한다. 놀이터이자 사랑방인 셈이다. 그런데 000간은 대체 뭐 하는 곳이지?
작은 봉제공장 980여곳이 옹기종기 모인 서울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시장의 배후 기지다. 40여년 전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은 버스비 30원을 털어 한 개 1원 하던 풀빵을 어린 여공들에게 사주고는, 자신은 이곳 창신동을 거쳐 쌍문동까지 걸어갔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전태일재단과 창신시장이 나온다. 가파른 언덕을 15분 걸으면 ‘대안적인 생산을 위한 문화예술 플랫폼’이라는 글씨 위로 ‘000간’(공공공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000간에서 첫째 0은 공감, 둘째 0은 공유, 셋째 0은 공생이다. 이제야 000간이 뭐 하는 곳인지 어렴풋이 짚인다. 말하자면, ‘봉제공장 밀집지 창신동에서 생산과 문화예술을 함께하며 지역주민과 공생을 꿈꾸는 곳’ 정도 되는구나. 000간은 ‘공공의 공간’이겠구나, 000은 주민들과 함께 채워가야 하는 빈칸이겠구나.
1층은 33㎡(10평) 정도로 제품을 전시하는 쇼룸 겸 커피와 음료를 파는 카페다. 봉제공장 문짝을 재활용해 테이블을 만들고 방석도 자투리 천을 활용했다. 20㎡(6평) 되는 2층은 업무공간으로 토요일에는 세미나를 연다. 아이들 놀이터나 사랑방 구실도 한다.
000간은 미술을 전공한 신윤예, 홍성재 두 사람이 만들었다. 2011년 창신동 해송지역아동센터와 기업의 사회공헌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일회성이 아니라 주민 삶에 밀착한 예술을 고민하게 됐다. 2012년 4월 출범한 000간은 기업이면서도 지역문화를 변화시키는 문화공작소다. 현재 디자이너와 프로그램 기획자, 공간 운영자 등 다양한 청년과 함께 활동한다.
신윤예 공동대표는 “봉제공장이 밀집한 창신동은 일터와 거주지가 한곳인 사람들이 많아요. 사람들한테 배우면서 재미있는 예술활동을 할 수 있지요. 미술만을 위한 공간인 갤러리가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삶의 장소에서의 예술’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신윤예·홍성재 청년미술가 2인 ‘삶의 장소서 예술하자’ 의기투합 셔츠 등에 예술적 상상력 보태고 간판 설치 등 지역재생에도 적극 000은 ‘공감, 공유, 공생’이란 뜻000간은 지역밀착형 문화를 일구고 있다. 우선 아이들을 위한 공공미술, 무용, 체육 프로그램 ‘마을이 배움터’를 진행하고 있다. 자치단체, 지역아동센터, 다른 단체의 후원을 받아 도서관도 만들었다. 도서관 책꽂이 만들기와 벽에 색칠하기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정기 프로그램으로 댄스시어터 틱 등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삶에 밀착한 예술’은 어떤 것일까?
예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역을 활성화하는 사업들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제작한 ‘제로웨이스트 셔츠’다. 봉제공장의 자투리 천으로 셔츠를 만들면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몇십 년 쌓인 봉제사들의 경험과 예술가적 상상력이 결합해 제로웨이스트 셔츠가 탄생했다. 보통 30% 발생하는 자투리가 5% 이하로 줄었다. 처음 만든 200벌이 모두 팔렸고 현재도 온라인(000gan.com)과 오프라인으로 판매중이다.
이들은 지역재생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현대자동차그룹과 함께 ‘H-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 없는 봉제공장에 간판을 설치하는 ‘거리의 이름들’, 오르막에 평상을 설치하는 ‘거리의 가구들’, 봉제거리를 새롭게 조망하는 ‘도시의 산책자들’ 등이 뼈대다. 요즘에는 봉제공장의 장기를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000간과 마주한 봉제공장 ‘이삭’은 ‘스커트 전문’이라는 작은 간판을 걸었다. 공장마다 특화된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또 ‘대량으로 빨리 만드는’ 창신동의 장점을 살려, 양복 커버, 자동차 커버, 화장품 포장지 등을 만드는 것도 기업들에 제안할 계획이다. 지난 9월 창신동 골목길축제 때 앞치망토를 개발했다. 앞치마와 망토 기능을 아우른 제품이다. 어린이는 골목길마다 수호신이 있다고 상상해 그림을 그리고, 어른들은 재봉틀을 돌려 뚝딱 제품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내놓은 제품으로는 제로웨이스트 셔츠(6만9000원), 앞치망토(2만5000원), 모두의 앞치마(2만원), 제로웨이스트 에코백(2만5000원) 등이다. ‘소비는 삶의 태도’가 온라인 매장의 슬로건이다. 쓰레기를 없애고 지역을 재생하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가 늘면 기업에서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고 결국 세상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두 청년 예술가의 꿈은 이렇게 삶 속의 문화예술,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지역경제 활성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윤예 공동대표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000간이 ‘밥과 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지역 청소년과 청년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가르쳤던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좋은 대학이나 대기업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진로를 고민할 겁니다. 이 친구들을 꾸준히 멘토링하면 자생력을 확보한 대안적인 삶을 시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이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여러 실험적인 대안을 만들면, 바로 이 지역 문화를 변화시키고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드르륵드르륵~. 창신동에는 봉제공장이 참 많다.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그곳에는 새로운 생산 방식과 예술을 꿈꾸는 000간 사람들이 있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처럼 창신동의 밥과 꿈은 오늘도 계속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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