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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잭 웨더포드 지음, 이종인 옮김/책과함께·2만8000원

여섯 권으로 된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1788년 출간된 그 마지막 권에서, 유럽의 관용 사상과 신생 미국의 종교적 자유가 칭기스 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짧은 각주를 남겼다. 잔혹하기로 유명한 칭기스 칸에게서 서양이 관용과 자유를 배웠다고? 지은이 잭 웨더포드는 이런 의문을 푸는 데 12년이 걸렸다. 책은 그 대답이다.

칭기스 칸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10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수백만의 적을 무찔렀고 수억명에 달하는 백성의 무릎을 꿇렸다. 무자비함이나 전략·전술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다. 당시는 종교적 열기와 갈등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서로 자신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 주장했다. 칭기스 칸은 그 틈바구니에서 ‘나의 종교가 중요하다면 너의 종교도 중요하다’며 종교적 관용을 내세웠다. 그보다 앞서 8세기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며 종교적 평화를 모색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슬림 주도의 종교적 평화였지, 칭기스 칸 같은 완전히 평등한 종교적 자유는 아니었다. 이런 전통은 후손들에게도 전수된다. 손자 몽케 칸이 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 대표들을 불러들여 ‘토너먼트 전’을 펼치는 대목은 흥미롭다. 누구도 언쟁을 벌이거나 모욕을 해서는 안 되고, 논의에 방해되는 소리도 금지한다는 게 경기 규칙이다. 최종 승자는 불교였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몽골일 것이다. 종교끼리 서로 싸우게 하면서 몽골을 평화로운 중재자로 자리매김하는 노회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의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