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뜻이 알쏭달쏭하여 다양하게 해석되고, 그래서 더 즐거운 말이 있죠.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ars longa, vita brevis). 보통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번역되는, 이 라틴어 격언도 그렇습니다.

인생보다 예술이라, 유명한 미술가가 한 말 같죠? 실은 먼 옛날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이래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요. 이 격언은 본디 ‘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의미였을지도 몰라요. 영어 낱말 아트(art)처럼 라틴어 아르스(ars)에도 예술과 기술 두 가지 뜻이 모두 있거든요.

‘기술은 멀고 인생은 짧으니’ 열심히 공부하자는 뜻일 수도 있어요. 많은 시간을 들여 의술을 배우고 연구하다 보면 인생이 짧다고 느낄 터. 학문은 이루기 어려운데 공부할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는, 주자의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이란 시구가 생각나네요. 한편 ‘인생의 짧음’에 초점을 맞춰 해석할 수도 있지요. 네로 황제의 불운한 스승 세네카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라는 에세이 첫머리에 이 라틴어 격언을 인용했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해석이 가장 친숙하죠. 작가가 죽어도 예술 작품은 남아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됩니다. 우리는 예술 작품 앞에서 자기 취향을 감히 고집하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은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으로 보답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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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2005년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모 시사 풍자 프로에 격노했어요.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의 <낙원에서의 추방>에 자기네 얼굴을 합성했다면서요. 여러분 보시기엔 어떤가요? 본떠 그려봤어요. 그분들 말로는 ‘누드’라 ‘외설’이라나요.

2011년에도 같은 양반들이, 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블로그에 올린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작품에 후끈 달아올라서 다시 공격중이네요. 인문 교양이 있고 없고를 따지고 싶은 게 아니랍니다. 작품 이름 한두 개 더 아는 게 무어 중요하겠어요. 다만 저 유명하다는 작품도 가볍게 무시하시는 이분들께, 우리처럼 힘없는 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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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자신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궁금해요. 저분들의 ‘천재적 감수성’을 우리가 미처 몰라뵌 건 아닐지? 하기야 이런 이들도 드물죠. 20세기 미술의 주요 흐름을 자신있게 ‘퇴폐미술’이라 규정한 히틀러 정권, 또 아름다운 바미안 석불을 우상이라며 자신 있게 폭파시킨 탈레반 정권 정도나 돼야 비슷하달까요. 나치와 탈레반은 진작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분들은 아직도 근근이 버티신다는, 이 ‘사소한 차이’가 더 불쾌하긴 합니다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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