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X)가 바벨탑을 재건했다.” 최근 엑스에 자동 인공지능(AI) 번역 기능이 도입된 뒤 사람들의 평가는 대략 한줄로 요약된다. 각자의 언어권 안에서 소통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자동 번역된 전세계 모든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달라진 소통의 환경에 사람들은 즉각 반응했다. 일례로 이재명 대통령이 올린 이스라엘 군대의 반인권적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 이스라엘 외교부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즉각 자동 에이아이 번역에 의지해 격한 반응을 이어갔다.
공적 가치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일론 머스크의 X가 만들어낸 ‘온라인 바벨탑’에서 세계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논쟁은 우리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 학살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관심을 실시간으로 모아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가 한데 뒤섞여 휘몰아치는 급류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처럼 만들어낸 관심이 조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피드 밖으로 눈을 돌려 좀 더 정제된 텍스트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10대를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10대를 위한’이라는 수식어는 국제 분쟁을 다루는 책들이 풍기는 난해한 인상을 완화하는 하나의 장치다. “오늘날 현실이 댐이 무너져 쏟아지는 거센 물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저와 여러분 주변에 넘쳐나는 말과 이미지들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이민과 분쟁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저자 프란체스카 만노키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을 정리해 보겠다는 야망도, 의도도 없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그저 제가 할 줄 아는 것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말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다양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10개의 장과 하나의 연대기로 구성된다.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2023년 10월7일 이후의 이스라엘에서 시작된다. 공습경보를 듣고 언제나처럼 지하 대피실로 가 목숨을 구한 88살의 이스라엘 시민 지바 레비, 또 다른 피해 지역인 셰파임 키부츠에서 공습이 진행된 20시간 동안, 마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자신의 네살, 여섯살 아이들에게 ‘이 공습이 진짜가 아니라 훈련’이라고 속이며 버틴 오데드와 야미트의 이야기를 읽으면, 10월7일 전후 이스라엘의 공습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느꼈을 혼란과 공포가 전해져온다.
저자는 지혜롭게도 여기에 곧바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대신, 전체적인 역사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는 나침반으로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짧은 역사’를 배치한다. ‘가자 지구’나 ‘하마스’란 무엇을 말하는지,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 ‘유대 국가 건설’과 시오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여기 포함된다. 이 파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국제연맹이 영국에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권을 부여한 시기부터 2022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필두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까지의 주요한 사건을 망라한다.
이어지는 2장은 이스라엘 정착촌에 둘러싸인 서안 지구 헤브론 남부의 동굴에서 태어나 정착민의 폭력을 피해 동굴에서 살아가는 어린이 야이샤의 이야기와 가족들 모두가 자는 방 안에 얼굴을 가리고 들이닥친 정착민들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며 부모님에게 빨리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당한 또 다른 열세살 어린이 지난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시 이스라엘로 향하는 3장의 핵심 인물은 10월7일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징병제에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한 18살의 이스라엘 소년 잇도다. 그는 10월7일 이후 정의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10월7일에 일어난 일은 끔찍했어요. 저희 가족도 습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가자 지구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충격은 우울과 분노로 바뀌었어요. 제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때문에 눈물 흘리면서 가자 지구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복수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4장에는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가장 큰 난민 캠프인 제닌 난민 캠프와 이스라엘 감옥을 오가며 산 45살의 왈리드 알파예드가 얼마 전 공습으로 잃은 열다섯살 아들 암자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세살에 불법으로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난생처음 바다를 보고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제 아들은 엠(M)16 총을 둘러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이스라엘 뉴스는 이 죽음을 ‘테러리스트가 피살되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지역의 스무살 청년 아부 무함마드는 열여섯살 때까지 오로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되어 2년간 이스라엘 감옥에 행정 구금된 뒤에는 풀려나와 이슬람 지하드에 합류했다. 저자가 공습 이후 폐허에서 만난 일곱살 소년 이브라힘은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싸우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제닌의 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프리덤 극장’이라는 이름의 극장을 운영하다 결국 체포된 극장 운영 담당자 무스타파 셰타의 이야기, 근이영양증을 앓는 아들이 집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에 급히 집에 돌아가려다 이스라엘의 통행금지령으로 발이 묶여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헤브론의 팔레스타인인 야히아 이다이스의 이야기, “팔레스타인의 집들이 파괴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주하게 된 것은 규정된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는 헤브론 정착촌의 시오니스트 소년 요나탄 샤이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태도다. “여러분이 평가를 내리도록 하려고 암자드의 아버지 왈리드나 아부 무함마드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질문해 보도록 하려는 거예요. 그날 밤 저를 잠 못 들게 만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폭력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토막 난 정보로 상황을 일축해 평가하는 것을 당연스레 요구받는 이 시대에, 같은 땅에서 점령당한 이들과 정착하는 이들이 경험하는 서로 다른 삶에 최대한 귀 기울인 뒤 우리 마음속에 남는 질문은 무엇일까. 적어도 그 질문을 발견해 낸 다음의 우리가 주고받을 말들은 조금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마음으로.

장혜영 |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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