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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때 계엄령 때문에 그 난리 났잖아요. 그런데 또 계엄령 내렸다는 말 듣고 깜짝 놀랐어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지구에서 만난 김중열(76)씨가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12·3 계엄 및 내란사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큰오빠 김중언(당시 19)의 표석을 어루만졌다. 행방불명인 표석 지구에는 4078기의 표석이 세워져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 같은 느낌을 준다. 이날 77주년 4·3추념식을 맞아 혼자서 또는 가족들과 함께 표석지구를 찾은 유족들은 표석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부모 형제를 찾는 모습이었다.
동생 김중옥(69)씨와 함께 큰오빠의 표석을 찾은 김씨는 “큰오빠가 일본에서 공부하다 돌아와서 얼마 없어 4·3을 맞게 됐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한국어를 몰랐던 것이 화근이 됐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중산간 마을 남원면 한남리에 살던 큰오빠는 군·경 토벌대의 검속이 심해지자 중산간으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됐다. 그 뒤 인천형무소에 수감된 큰오빠는 세 차례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큰오빠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언제가 꼭 살아 돌아오신다고 했지요. 46년 전 돌아가시면서 손에는 큰아들 편지를 쥐고 돌아가셨어요.”

중열씨는 “계엄령 같은 사태는 없어져야 한다. 4·3 때 계엄령 때문에 다 죽지 않았나?”라며 “옥석을 가려서 죽인 것이 아니다. 이제 그런 계엄령은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김정자(84)씨는 아들과 함께 시아버지 현순기(당시 25)의 표석을 찾았다. 7살에 4·3을 겪었다는 김씨는 “시부모 모두 4·3 때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동네에서 돌아가셨는데 시아버지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며 “소문에 들으면 목포형무소에서 갔다 오다가 행방불명됐다고 들었다. 뼈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의 시아버지 표석에는 1949년 10월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행방불명됐다고 적혀 있다. 김씨는 “가족들이 채혈을 했는데도 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들과 딸, 증손자들과 함께 표석을 찾은 김인근(91)씨(엄마는 총 맞아 으깨진 턱과 손으로 언니를 업고 왔다 “꼭 알려, 살아서…”)는 큰오빠 김호근의 표석 앞에 준비해온 제물을 정성껏 차려놓고 상주 노릇을 했다.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까지 자식이 찾아왔다. 4·3 당시 여덟 식구가 죽고 혼자 살아남았던 김씨는 이날 큰오빠의 표석 앞에 증손자까지 포함해 모두 12명의 대식구를 거느리고 섰다.

“빨갱이 가족이엔 허카부덴 어디강 곧지도 못하고 숨죽영 살아수다.”(빨갱이 가족이라고 할까 봐 어디 가서 말하지도 못하고 숨죽여서 살았어요) 가족들과 함께 처형장으로 가는 트럭에 탔다가 도망쳐 목숨을 건진 김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각명비 앞에도 유족들이 줄을 이었다. 서귀포시 상예리에서 온 오연규(87)씨가 국화를 놓은 각명비에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큰오빠가 행방불명된 뒤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희생됐다. 혼자 살아남은 오씨는 가지고 온 빵과 제물을 차려놓고 종이컵 3개에 조금씩 술을 따른 뒤 절을 했다. 추념식장으로 걸음을 옮기기 위해 일어선 오씨가 말했다.
“죽어지지 안허난 살아수다.”(죽지 못하니까 살았습니다)
77년이 지나 잊힐 법도 한데, 여전히 유족들에게 4·3의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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