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소원을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31일 오후 광주고법 204호 법정에서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최인규)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김재림(88) 할머니가 말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가던 김 할머니는 이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재판의 원고로 나왔다. 김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가족 등 4명은 2014년 2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뒤 첫 항소심 재판이어서 관심이 쏠렸다.
1944~45년 일제에 강제동원된 10대 초·중반의 소녀들이 군수공장으로 끌려갔다. 1944년 5월말 “여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 갔던 김 할머니는 1945년 10월말까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제작소에서 일하고도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1944년 12월 대지진 때 무너진 건물더미에 묻혀있던 김 할머니는 가까스로 구조됐으나, 함께 도망치던 사촌 언니는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귀국한 김 할머니는 결혼해 남매를 낳은 뒤 남편과 사별해 평생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은 2012년 10월부터 광주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3건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양금덕(89) 할머니 등 5명이 제기한 첫번째 소송은 항소심까지 승소했지만 2015년 7월부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 중이다. 이 사안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고의 지연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할머니 등이 제기한 2차 소송도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고, 김영옥(86) 할머니와 피해자 조카 등 2명이 지난해 8월 제기한 세번째 소송도 1심에서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미쓰비시 쪽 변호인은 “유사한 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만큼 그 결과를 보고 선고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고 쪽 변호인은 “이번 사안은 지난 30일 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사건과 쟁점은 동일하다. 원고가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선고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변론 종결 뒤 원고들의 의사를 반영해 애초에 12월 중순 이후로 논의됐던 선고 기일을 12월 5일로 지정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일제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에 대한 재상고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며 “원고들의 나이가 90대 전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범 기업들은 원고들에게 서둘러 사죄하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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