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나라에 있는 영감님이 알아볼까요?”
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의 벽화 제작 현장. 61년 동안 소록도에서 살았던 한센인 장인심(77·신생리) 할머니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마을별 대표로 나온 한센인 30여명과 자원봉사자 사이에서 자신의 얼굴을 아크릴 물감으로 곱게 그려갔다. 얼굴이 음각 된 돌판에 물감을 예쁘게 입힌 장 할머니는 만족감으로 얼굴이 밝아져갔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장 할머니는 소록도 반세기의 회한을 담은 자작곡 <하늘 나라로 가는 이 몸>을 흥얼거렸다.
“16살 처녀 때 소록도에 들어와 좋은 것, 들은 것, 겪은 것이 너무나 많아. 오늘은 벽화에 얼굴을 그려놓고 10년 전에 죽은 영감님을 떠올리니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병세가 깊어 병원에 입원중인 김점이(66) 할머니는 돌판에 새겨진 얼굴 윤곽을 한동안 어루만지며 감회에 젖었다. 생각에 잠겼던 김 할머니는 빨강 파랑 물감으로 알록달록 붓질을 이어갔다.
고흥 남포미술관과 국립소록도병원은 이날 ‘아름다운 동행, 소록도 사람들’이라는 벽화 제작에 한센인과 봉사자, 간호사 등이 참여하는 특별행사를 마련했다. 행사에는 재능을 기부해 사진을 찍고 음각으로 본뜬 작가 박대조·고경희·현정호 등이 참석해, 한센인들이 화강석과 대리석 돌판에 새긴 자신의 얼굴을 찾고 윤곽을 따라 채색하는 작업을 거들었다.
벽화에는 한센인 400여명의 얼굴과 소록도의 아픔과 상처, 자유롭고 희망이 넘치는 미래 등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담긴다. 작가들이 제작한 28t 분량의 돌판은 소록도병원과 중앙공원을 잇는 통로에 길이 110m, 높이 3m 규모로 설치된다. 이달 말이나 4월 초 완공되면 한해 50만명이 감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호(63) 소록도 자치회장은 “그냥 그림이려니 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다. 좀처럼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는 주민들이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자기 얼굴을 어루만지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새로운 명물이 되겠다”고 반겼다.
벽화 행사를 기획한 곽형수 남포미술관장은 “소록도 역사 100년 만에 벌인 벽화 작업이었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