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국의 탐험가 조지 로우 (George Lowe) 는 해발 2 만 3000 피트 ( 약 7000 미터 ) 이상의 고도에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 그는 에베레스트 산비탈에서 줄기러기 (Bar-headed Goose, 학명 Eulabeia indica ) 떼가 편대 비행을 하며 산 정상 바로 위를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내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 나 역시 4 월의 어느 날 밤 , 해발 1 만 5000 피트 ( 약 4600 미터 ) 에 위치한 바룬 빙하 캠프에서 줄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 그들은 별빛이 쏟아지는 마칼루 산 상공 수마일 위 , 보이지 않는 하늘 길을 따라 티베트의 호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1961 년 히말라야 고산 지대의 생태를 연구하던 과학자 로런스 스완 (Lawrence Swan) 은 줄기러기에 대해 이와 같은 관찰 기록을 남겼다 . 별빛이 보이는 밤하늘을 날아가는 줄기러기 무리의 광경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을 것이다 . 하지만 인간의 감상과는 달리 줄기러기는 어쩌면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을 견디며 죽을힘을 다해 날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조지 로우가 줄기러기를 관찰했다고 증언한 에베레스트 산은 해발 8800 미터가 넘는다 . 해발 8000 미터 고도에선 지상 대비 산소 농도가 35 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진다 . 인간은 통상 해발고도 2400 미터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면 저산소혈증에 의해 고산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고도는 대략 7000 미터 정도를 한계로 본다 . 인간이 숨을 쉬기도 힘든 높이를 줄기러기는 어떻게 날갯짓까지 하며 건너갈 수 있을까 ?

비교적 최근까지도 줄기러기의 비행경로는 밝혀진 게 없었다 . 인간의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소리를 통해 줄기러기의 고도 비행에 대해 어림잡아 추산을 하고 있었다 . 지난 2000 년 인도 연구팀이 줄기러기 두 마리를 포획해 위성 송신기를 부착한 게 첫 시도였다 . 2000 년 3 월 23 일 , 인도 북부 바라트푸르에서 출발한 줄기러기는 갠지스 강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시속 29 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히말라야 평균 고도 6,000~8,000 미터의 험준한 산맥을 통과했다 . 그리고 직선에 가까운 경로로 504 킬로미터를 이동해 24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티베트 고원에 도착했다 . 비록 표본 수는 적지만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줄기러기의 히말라야 종단의 비밀이 비로소 밝혀진 순간이었다 . 이후 GPS 를 활용한 추적 연구와 더불어 생리적인 적응 과정을 탐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
줄기러기가 지닌 생리적 특징을 밝히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근연종과의 비교 작업이다 . 회색기러기 (Grey Goose, 학명 Anser anser ) 는 줄기러기와 분류학적으로 같은 속에 속하는 근연종이며 서식지도 가깝다 . 하지만 이들은 주로 저지대에서만 살아 높은 고도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 따라서 회색기러기와 줄기러기를 비교하면 줄기러기가 고지대에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 수 있다 .
유전적으로 비교해 보면 줄기러기는 헤모글로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 산소에 대한 결합력이 매우 높다 . 따라서 산소 분압이 낮은 고지대에서도 고산병에 걸리지 않고 혈액 내에 산소를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 뿐만 아니라 고강도 비행을 견딜 수 있도록 근육이 발달하였고 , 근육 섬유에 모세혈관의 밀도가 높고 구조가 균일해서 산소의 확산을 돕는다 . 또한 세포 내 에너지 생성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모세혈관 근처에 재배치되어 있어서 산소가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 이러한 생리적인 특징을 종합해 보면 줄기러기는 혈액 , 혈관 , 세포 , 근육 자체가 남다르게 진화되어 산소의 이용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적응했다 . 따라서 히말라야를 넘는 고도 비행 중 극심한 저산소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이를 버티고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줄기러기는 숨 쉬는 방법도 독특하다 . 산소가 부족해지면 호흡 횟수를 늘리기보단 , 한 번에 들이마시는 공기의 양을 늘려 매우 깊게 숨을 쉰다 . 얕은 호흡을 여러 번 하는 것보다 호흡의 깊이를 증가시켜 실질적으로 산소 흡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 게다가 저지대에 사는 분홍발기러기 (Pink-footed Goose, 학명 Anser brachyrhynchus ), 흰뺨기러기 (Barnacle Goose, 학명 Branta leucopsis ) 와 비교하면 폐의 무게가 약 25 퍼센트가량 커서 가스 교환을 통해 산소를 흡수할 수 있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다 . 이처럼 특화된 호흡계는 몸속으로 산소를 끌어들이기 위한 생리적인 뒷받침이 된다 .
줄기러기는 비행 능력도 일품이다 . 심박수 , 고도 , 체온 , 가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바이오로거 (biologger) 를 부착해 정밀한 자료를 수집한 결과 , 이들은 높은 고도를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라 지형을 따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절감했다 . 실제 비행의 90 퍼센트는 해발 고도 5000 미터 이하에서 이뤄졌고 , 8,000 미터를 넘는 고도는 매우 드물게 나타났다 . 또한 지면을 따라 비행하다가 상승기류를 활용해 고도를 높이는 전략을 이용해 힘을 아꼈다 .
극한에 가까운 줄기러기의 상승 비행은 유전학 , 생리학 , 행동학이 결합된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이다 . 유전자 수준에서 남들과는 차별화된 특이적 유전자 발현을 통해 산소 결합력을 높였으며 , 산소 이용에 특화된 호흡계와 심혈관계의 구조 덕분에 높은 고도에서 장시간 비행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 타고난 신체 능력에 가미된 뛰어난 비행 기술은 이들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특별함을 더했다 . 오랜 진화의 세월에 걸쳐 얻어진 적응 비결 덕에 줄기러기는 다른 어떤 동물도 생존하기 어려운 고도를 날아오르게 됐다 . 그 비행은 단순히 히말라야 산맥 하나를 넘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 줄기러기 조상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하늘을 나는 일을 반복하며 얻어진 자연 선택의 결과물이며 , 그들의 날갯짓 하나에는 수백만 년의 진화 역사가 녹아 있다 .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https://www.hani.co.kr/arti/SERIES/3304?h=s)에서 만나보세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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