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김재원 등 대거 탈락 ‘영남 대학살’ 격앙
이-박 갈등 첨예화…‘한지붕 동거’ 어려운 상황

13일 발표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영남지역 현역의원 대폭 물갈이는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공천 발표의 핵심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계 핵심 현역의원들의 몰락이다. 공천 탈락한 현역의원들의 수로만 보면 이명박 대통령 쪽이 12명으로 10명인 박 전 대표 쪽보다 2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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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질적인 면에선 박 전 대표 쪽의 타격이 훨씬 커 보인다. 박 전 대표 쪽은 사실상 계파의 좌장 구실을 해온 김무성 의원이 탈락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월 부정·비리 전력자의 공천 신청 자격을 제한하는 당헌당규에 걸렸으나 박 전 대표를 비롯한 계파 전체가 나서서 막아낸 바 있다. 중량감 있는 중진이 부족한 박 전 대표 진영에서 그가 구심점 구실을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의 탈락이 더욱 치명적인 까닭이다. 김무성 의원의 탈락은 사실상 박 전 대표 계파의 급속한 와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경선 때 박 전 대표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 의원도 탈락했다. 그는 박 전 대표 캠프의 핵심 전략가로 꼽혀왔다. 여기에 김기춘·박종근 의원 등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자문을 구했던 원로·중진 의원들도 고배를 마셨다. 한 당 관계자는 “사실상 박 전 대표가 당에 있을 수 없도록 등을 떠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총선 과반보다는 박 전 대표 쪽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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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를 떠나 중진이나 고령 의원, 과거 논란이 됐던 경력을 지닌 의원들을 탈락시킨 점도 전면적인 이 대통령 쪽의 당 재편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5선의 박희태 의원, 대선 선대위 특보단장을 맡았던 3선의 권철현 의원, 역시 3선의 정형근 의원과 이상배·안택수·권오을 의원 등은 ‘친이명박’ 진영 인사들인데도 탈락했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선 4선의 이강두 의원을 필두로 3선의 김기춘·김무성·박종근 의원과 재선의 이인기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 쪽 중진들을 담보로 김무성·김기춘 의원을 탈락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음주·추태 관련 문제가 불거졌던 김태환·임인배 의원도 고배를 마셨다. 박 전 대표 쪽을 치면서 동시에 당의 면모 일신을 꾀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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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명박 대통령 쪽의 당 장악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 이상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 쪽과 박근혜 전 대표가 사실상 한 지붕 아래 동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분당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전날 “원칙 없는 공천”이라고 당의 공천 과정을 비판하며 영남 지역 측근 구하기에 안간힘을 썼으나 물거품이 됐다. “영남 공천을 두고 보겠다”는 박 전 대표로선 핵심 측근들의 대거 탈락이란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받아든 만큼 탈당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나라당의 공천 폭이 예상 밖으로 커진 것은 통합민주당 쪽의 공천에 자극을 받았다는 평도 나온다. 전날 민주당이 이인제 의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의원, 최고위원인 김민석 전 의원 등을 탈락시킨 데 위기감을 느꼈다는 분석이다.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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