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29일. 박근혜 당선인이 지명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닷새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헌정 사상 역대 정권이 지명한 초대 총리 가운데 두번째 낙마 사례였다. 총리로 지명된 뒤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직에서 물러난 첫 후보자라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늘 약자 편에 서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지명 이튿날부터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의 모습은, 이전까지 김 후보자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특히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은 결정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차이는 밥을 먹느냐, 전화를 하거나 포럼을 하느냐의 차이다. 두 사람 모두 수첩에 의존해 인사를 했다.”

지난해 1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하며 박 전 대통령과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괜찮다는 얘기를 접하면 즉시 수첩에 그 사람 이름을 적고 이리저리 탐문을 해봐. 그런 뒤에 맘에 들면 함께 밥 먹는 자리를 마련해 ‘인물 감별’을 했거든. 아주 비중 있는 인물이면 단둘이 만났고 그렇지 않으면 여럿이 섞어서 만나기도 했어. 그래서 진짜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불러다 썼어. 박 당선인도 비슷해. 수첩에 이름을 적어놓고 이리저리 묻고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해보거나 무슨 포럼에 불러서 자연스럽게 관찰을 하기도 해. 자기가 나름대로 검증을 해서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누가 말한다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거지.” 박 대통령이 애용한다는 ‘인사수첩’은 사적인 감과 직관에 의존하게 하고 공적 시스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징물처럼 됐다. ‘밀봉, 비선, 불통, 자물쇠, 나홀로’ 등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나오게 된 출발점이 바로 이 ‘인사수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에게 수첩은 지식과 경륜이 모자라고 답답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소재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수첩은 국민과 소통하는 수단도 되고 또 민생을 챙기는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꼭 갖고 다니면서 기록할 생각”(2012년 9월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며 수첩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첩에 적힌 내용이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는 ‘결정적 자료’이자 ‘유일한 근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첩 인사’는 보안제일주의와 결합하면서 객관적인 검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공적인 인사 시스템을 무력화한다.

박 대통령은 ‘철통 보안’을 인사의 제1원칙으로 내세운다. 핵심 측근들조차 “우리도 인사에 관해선 깜깜이”라고 말할 정도다. 인사청탁을 막고 하마평에 따른 혼선을 줄이면서 인사권을 극대화하려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스타일은 공적 검증 시스템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부실 검증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에게 ‘나홀로’, ‘불통’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측근들에게만 둘러싸인 채 바른말과 쓴소리를 하는 인사들을 멀리하면서 형성된 이른바 ‘공포형 리더십’ 탓도 크다. ‘촉새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의 원칙이 공포형 리더십을 강화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종배 시사평론가(<시사통 김종배입니다> 진행자)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진단’은 달랐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으로 닷새 만에 사퇴하자,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검증작업을 비판하고 나섰다고 한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검증을) 하게 되면 능력 면은 다 들여다보기 어렵지 않겠느냐”, “죄인처럼 혼내는 인사청문회 때문에 나라의 인재를 데려다 쓰기가 어렵다”, “인사청문회 과정이 털기 식으로 간다면 누가 나서겠느냐”, “망신주기로 인사청문회가 변질된 것 같다”. 자신이 ‘밀봉 인사’를 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억울해했다고 한다. “가령 후보군 2~3명의 이름이 알려지면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 않을 사람까지도 신상털기로 피해를 볼 수 있지 않으냐. 그래서 물망에 누가 올랐는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다. 나도 참 어렵다.”

2014년 2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낙마한 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당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수첩도 이제는 한계인 거 같다”고 했다. 한 친박근혜계 의원은 “수첩이 다 떨어지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 혼자 하는 ‘사설검증식 인사’의 변화를 기대하며 나온 말이다. 인사청문회가 무섭다면 수첩을 버리고 인사시스템을 통해 제대로 발탁하면 될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차이는 밥을 먹느냐, 전화를 하거나 포럼을 하느냐의 차이다. 두 사람 모두 수첩에 의존해 인사를했다.

- 지난해 1월 당시 당선인과 가까운 한 인사의 발언

1975년 12월19일 박정희에게 국무총리 서리 임명장을 받는 최규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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