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이 닳겠구나

- 황교안 법무부 장관

원세훈 수사 방해, 청와대와 '이심전심'

"장관 책임져야" 검사들 분노 한몸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2013년 2월28일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속에 '청와대 꼭두각시'라는 검찰 안팎의 비난을 받던 황 장관은 2013년 9월17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수고가 많으셨다"는 박 대통령의 '칭찬'을 받는다

2014년 2월14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가 정치인으로 ‘복권’됐다. 1년 전인 2013년 2월14일, 대법원은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을 폭로한 그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2005년 8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현직 고위검사 7명의 이름을 공개했다가 검찰에 의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8년 만에 나온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이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노 전 의원이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전날인 2013년 2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노 전 의원의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다. 황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던 2005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수사를 지휘한 인물이다. 유력 대선 후보와 검사들에게 불법 자금을 전달하려 한 정황이 안기부 도청 녹취록으로 생생하게 드러났는데도, 황 후보자는 그해 12월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학수 삼성 부회장, 홍석현 중앙일보사 사장, 뇌물을 받았다는 전·현직 검사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건희 회장은 서면으로만 조사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정작 죄가 있다며 기소한 이들은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인들이었고, 도청 내용을 공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노 전 의원 역시 2007년 5월 기소된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 수사가 형평성은커녕 일반의 법 감정에 어긋난 결말로 끝난 2005년 12월. 황 후보자는 <중앙일보>로부터 ‘상’을 받는다. <중앙일보>는 “올해 우리에게 세상 사는 맛을 안겨준 새뚝이들을 소개한다”며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던 황 후보자를 사회 분야 새뚝이로 선정했다. ‘새뚝이’는 남사당놀이에서 기존 놀이판의 막을 내리게 하고 또 다른 장을 새롭게 여는 사람을 일컫는다. <중앙일보>는 “법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하면 숨어있는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자신한다”라는 황 후보자의 낯간지러운 소감을 소개하며,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수사가 진행된 143일 동안 이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검찰 공안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답게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시비나 수사 기밀의 외부 유출 등 작은 실수 없이 수사를 말끔하게 마무리했다.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도청의 최고 책임자들을 단죄함으로써 유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새뚝이? 확실히 황 후보자는 삼성 엑스파일 사건 수사를 통해 검찰 수사의 새로운 장을 펼쳐 놓기는 했다. 처벌을 면한 당사자가, 그런 불기소 결정을 한 검사에게 ‘수사 잘했다’고 주는 상을 넙죽 받아드는 황 후보자의 모습에 검찰 내부에서도 ‘낯뜨겁다’는 말이 나왔다.

황 후보자가 ‘칭찬’을 받아내는 데 능하다는 것은 법무부 장관이 된 뒤에도 확인된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속에 ‘청와대 꼭두각시’라는 검찰 안팎의 비난을 받던 황 장관은 2013년 9월17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수고가 많으셨다”는 박 대통령의 ‘칭찬’을 받는다. 정작 검찰 후배들로부터는 공개적으로 “못난 장관”이라는 소리를 듣는 장관이었지만 말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고위 법조인 출신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의혹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줬다.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임하기 직전 13억9000여만원이었던 그의 재산은 불과 1년6개월여 만에 12억여원이 늘었다. 검찰 퇴직 직후 들어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자리를 맡아 17개월 동안 받은 보수가 15억9000만원에 달했다. 다달이 1억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원장에 지명됐던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법무법인에서 6개월간 7억원을 받은 사실이 논란이 돼 낙마했다.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황 후보자는 “세금을 빼면 월 5800만원 정도였다”고 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황교안 후보자가 2013년 2월28일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민주당 의원들이 2013년 11월19일 황교안 장관 해임 건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2013년 9월17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장관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황교안 장관이 2014년 2월19일 국회 법사위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군대에 가지 않은 황 후보자의 병역면제 사유도 도마에 올랐다. 황 후보자는 징병검사를 3차례 연기하다 ‘두드러기’(담마진)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최근 11년 동안 두드러기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은 고작 4명뿐이었다. 참으로 희귀한 질병으로 면제를 받은 셈이다. 2013년 6월4일 <한겨레>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검찰의 방침에 황교안 장관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보도가 실렸다. 보도가 나간 뒤로도 황 장관은 검찰 특별수사팀의 영장청구 의견을 계속 뭉갰다. ‘외풍’을 막아줘야 할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후배 검사들의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황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법리 검토’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박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꼬리표를 달게 할 수 없다는 청와대 쪽과의 ‘이심전심’을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다. “검찰 수사에 외압이 있다면 몸으로 막겠다.” 몸소 외압을 실천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던 황 장관은 6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검찰 수호천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야당 의원들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수사에 청와대가 압력을 넣으면 장관이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자 내놓은 말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이 절정에 달해 가던 9월 중순. 황 장관을 ‘수호천사’로 여기는 검사들은 없었다. 9월13일 황 장관이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사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쏟아냈다. 일부 검사는 “장관도 명예를 지키려면 사표를 내야 할 것”이라며 분을 삭였다. 황 장관은 자신에게만은 한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10월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이 열린 국회에 출석한 황 장관은 채동욱 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와 관련해 “내게도 의혹이 나오면 스스로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곧바로 의혹이 터져 나왔다. 황 장관이 부장검사 시절 삼성그룹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언론보도를 통해 나온 것이다. 황 장관은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을 거론하며 “그때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수사를 맡았던 조준웅 전 특검은 “이번에 언론에 제기된 (황 장관 관련) 의혹은 당시에는 안 나온 것”이라고 했다. 조 전 특검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 황 장관이 엉뚱한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황 장관은 약속한 대로 자신에 대한 감찰 조사를 스스로 요청하는 대신 해당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다.

10월21일 서울고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황 장관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많았다. (황 장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폭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흘 뒤인 10월24일 황 장관은 기자들에게 ‘법무부 장관 입장’이라는 전자우편을 돌린다. “지금 검찰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검찰은 정치와 무관하게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련의 사태는 수사와 재판 중에 있는 사안에 대해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자신을 ‘검찰 수호천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체이탈 화법’은 박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11월21일 보다못한 민주당이 황교안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당의 반대 속에 처리 시한을 넘기며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해를 넘겨도 황 장관은 탄핵 대상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다. 2014년 2월12일 민주당은 다시 황 장관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부분 표결에 불참하면서 이들의 해임건의안은 정족수 미달로 개표도 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14년 2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탈북 화교 출신으로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 사건의 ‘증거조작’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었다. 민주당 소속인 박영선 법사위원장과 황 장관 사이에 답변 태도를 두고 10여분 말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보다 못한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검찰 출신인 권 의원은 황 장관에게도 ‘그만 나가라’고 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 황 장관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여당 간사의 권고에 의해서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 야당 의원들이 벙 찐 표정으로 황 장관을 바라봤다. 박 위원장은 “이석은 위원장 권한이고 회의 진행도 위원장 권한”이라며 제지했다. 황 장관이 법사위원장의 권한을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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