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인사 불통참사 2

-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5년된 수첩에서 꺼낸 '진주'

'임명 이유' 모른채 모래속으로

"모래알 속 진주"는 자신의 '진면목'을 44일 뒤 강렬하게 드러낸다. 2013년 4월2일 열린 윤진숙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후 "크크", "잘 모르겠다", "잊었다"는 수많은 '어록'을 남긴 희대의 인사청문회로 기록된다.

윤진숙 전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 '웃음'.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잠시 전 윤진숙 해수부 장관에 대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해임건의를 받으시고 윤 장관을 해임조치하셨습니다.”

2014년 2월6일 저녁 7시. 전날 언론윤리 논란 속에 임명된 민경욱 새 청와대 대변인이, 295일 전 자질논란 속에 임명됐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전격 해임 소식을 아무런 배경설명 없이 한 문장으로 전했다. 임명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임명 이유’를 알지 못했던 윤 장관은 그렇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래알 속의 진주”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초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인상 깊게 본 ‘윤진숙’이라는 이름을 어딘가에 적어 놓았다가 5년 뒤 “진주”라며 꺼내 놓았다. 1년 전인 2013년 2월17일의 일이다. 그 역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위에서 불과 닷새 만에 낙마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윤진숙 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11명의 장관 후보자의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실시한 4차례의 주요 인사 발표 때처럼 전·현직 직책만 간단히 밝혔을 뿐, 이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를 수행할 적임자인지, 어떤 기준에서 뽑았는지, 왜 발탁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전혀 없었다.

윤진숙이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인수위 쪽은 결혼 여부도 언론에 확인해주지 못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으로 소개된 윤진숙 후보자에게 언론은 “해양수산 분야 정책 전문가로, 다만 해양산업의 미래 비전을 이끌 적임자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는 짧은 평가를 붙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모래알 속 진주”는 자신의 ‘진면목’을 44일 뒤 강렬하게 드러낸다. 2013년 4월2일 열린 윤진숙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후 “크크”, “잘 모르겠다”, “잊었다”는 수많은 ‘어록’을 남긴 희대의 인사청문회로 기록된다. 윤 후보자는 국내 어업 생산량 규모, 인접 경쟁국인 중국과의 수산물 생산량 차이 등 기본적인 정책 질문에도 답변하지 못했다. “40여일간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윤 후보자는 사전에 제출한 답변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나와 동문서답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어색한 웃음으로 답변을 얼버무렸다. 전문성과 능력이 눌변에 가렸을 수도 있다. 깨알같은 통계를 모두 외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긴장하기 마련인 인사청문회 분위기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윤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야당은 물론, 이례적으로 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임명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보수언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 스타일을 우려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수첩을 믿었다.

4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민주당 지도부를 불러 만찬을 하며 “윤진숙 후보자의 임명을 도와달라”고 ‘식사정치’를 폈다.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문회에 나와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윤 후보자가 마음을 가다듬어 잘해보겠다고 한다. 윤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그 분야에서 여성을 발탁해 키우려던 생각이었다. 쌓은 실력이 있으니 지켜보시고 도와달라.” 박 대통령은 닷새 뒤인 4월17일 기어코 윤진숙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한다. 임명장을 받아든 윤 장관은 “대통령과 국민에게 염려 끼치지 않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틀 뒤 윤 장관으로부터 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이렇게 업무보고가 흥미진진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밝은 가능성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고

윤진숙 후보자가 2013년 2월2일 인사청문회에서 웃으며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윤진숙 장관이 2013년 4월17일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4년 2월1일 기름 유출 사고 현장을 방문한 윤진숙 장관이 코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윤진숙 장관이 2014년 2월12일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높게 평가했다. 열달 뒤인 2014년 2월12일 오전 11시. 계획대로였다면 이날 윤 장관은 남극에서 열리는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식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세종시 정부청사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서 해수부 차관과 간부들이 참석한 자신의 퇴임식에 참석해야 했다.

퇴임식 1주일 전 윤 장관은 전남 여수 기름유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했다가 “1차 피해는 지에스(GS)칼텍스, 2차 피해는 어민”이라고 한 발언이 결정타가 돼 취임 295일 만인 2월6일 전격 해임됐다. 존재감이 없어 ‘스텔스 총리’라는 소리를 듣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했고, 곧바로 대통령의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

임명 뒤로도 말실수와 부적절한 정책판단이 종종 입길에 오르기는 했지만 ‘윤진숙 스타일’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그사이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윤 장관과 같은 ‘수첩인사’ 출신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여론을 들쑤신 직후였다. 현 부총리는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두고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에 대한 문책론을 일축하는 듯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런 일이 재발하면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상황이었다.

수장을 갑작스레 잃은 해수부에서는 “정책은 없고 장관 이미지에 대한 호불호가 논란을 키웠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윤 장관도 상처를 받았다.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왔다. 힘센 경제부처 수장은 자리를 유지하고 힘없는 부처의 수장만 본보기가 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수첩인사’로 임명된 윤 장관이, ‘수첩인사’로 임명된 현 부총리 때문에 물러난 셈이다.

윤 장관의 퇴임식이 있고 4시간30분 만에 새 해수부 장관으로 4선의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지명됐다. 몇 달씩 걸리는 다른 인선에 견줘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해양수산부 장관 공석 이후 조속히 조직을 안정시키고 업무를 계속할 필요성에 따라 공석 사태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의 특보단장을 맡았던 이 의원은 장관 임명의 기준인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법관 출신인 이 의원은 지역구가 옛 마산시라는 점 외에는 ‘해양’이나 ‘수산’과 전혀 인연이 없다. 후임 장관으로 현직 정치인 출신의 장관을 발탁한 데는 이유가 있다. 윤진숙 장관의 낙마가 결국 ‘정무 감각’이 부족한 탓이라는 판단과 함께, 지난 1년간 박 대통령의 ‘천하인재들’을 괴롭힌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한번 썼던 사람을 다시 쓰는 박 대통령의 좁은 인사 스타일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윤 장관이 물러난 뒤 “우리가 윤진숙을 그렇게 반대할 때 대통령이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2008년 초 국회 세미나에서 윤 전 장관을 인상 깊게 보고 수첩에 적어 놨다는 얘기도 ‘이제는 믿지 못하겠다’는 이도 나왔다. 친박근혜 한 의원은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도 토론회나 세미나에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있지 않았다. 본인 발언시간 때만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남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윤 전 장관이 토론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봤다’는 식의 떠도는 얘기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실패로 끝난 ‘윤진숙의 발탁’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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