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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 문제다.”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지만 ‘현 정부’를 향한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던 2012년 8월17일. 경선 후보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이 <에스비에스>(SBS) 시사토론에 출연했다. 박 대통령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사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인사 실패’로 돌렸다. 그러면서 “불행히도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소통이 안 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박 대통령 자신의 것이 된 ‘불통’을 시원하게 비판한 것이다.

새누리당 대선 주자로 선출된 박 대통령은 2012년 12월1일 경남 창원역 광장 유세에서 ‘천하인재론’으로 자신의 스케일을 한껏 키웠다. “정부가 유능해지려면 무엇보다 탕평인사로 일 잘하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세는 이렇게 정리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성별과 지역과 여야를 떠나서 천하의 인재를 등용해서 최고의 일류 정부를 만들겠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가장 필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였다.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정권 1년차를 책임질 핵심부처 장관 후보들이 낙마하기 위해 임명됐다. 미국에서 벤처신화를 일궈냈다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기업인이, 공고를 나와서 한국 벤처1세대 성공신화를 쓴 기업인이 깜짝 등장했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제대로 된 검증은 없었다.

소리소문 없이 내정됐다가 얼마 못 가 조용히 교체된 청와대 참모진도 부지기수다.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임기 1년을 채워가던 지난 2월3일 내정을 발표한 천해성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을 불과 일주일 만에 전격 경질했다. 청와대의 인사 혼선 문제가 또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나홀로 인사’, ‘불통 인사’, ‘깜깜이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가 대통령 임기 1년을 따라다녔다. 천하에서 인재를 찾지 않고 좁디좁은 수첩만 뒤적인 결과였다. 반면 본인의 수첩에 없는데도 ‘어쩔 수 없이’ 임명한 인물을 기어이 ‘찍어내는’ 집요함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얘기다. 2004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인재를 많이 썼다. 천하의 인재를 두루 모아 팀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서일까. 박 대통령 인사에는 ‘유신통치’의 그늘이 짙다. 자신의 수첩을 중시하는 인사 방식뿐만이 아니다. 실제 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이들이 수십년 뒤 거짓말처럼 박 대통령 밑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앞으로 남은 임기 4년도 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큰일이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제주 관광산업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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