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들이 하나 있다 . 간절한 기도 끝에 어렵게 얻은 귀한 아이다 . 몇번의 유산 끝에 남편과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욕지도로 내려갔다 . 작은 절에 머물며 예불을 드리고 ,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 1 년여의 기도 끝에 , 아이가 우리를 찾아왔다 . 잉태하던 날의 그 신비로운 경험이 지금도 또렷하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 임신 6 개월 무렵 교통사고를 당했다 . 무면허 음주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 우리 차를 들이받고는 , 거짓 번호를 남긴 채 달아났다 .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 나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 아이 하나를 품은 몸으로 , 누군가를 죄인 삼기가 망설여졌다 . 기도 덕분이었을까 . 다행히 그에 대한 원망은 들지 않았다 .
교통사고 이후 , 병원에서는 아이의 위치가 불안정하다며 입원을 권했고 , 좁은 골반 때문에 제왕절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 하지만 나는 자연분만을 원했다 .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 감사하게도 뱃속 아가와 마음이 통했는지 , 병원 가는 길에 아이가 신호를 보내왔고 , 나는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 후유증은 길었고 몸도 많이 힘들었지만 , 생명을 품고 낳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했다 . 그렇게 찾아온 아이 . 우리는 그 아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 정성껏 길렀다 .
그러나 남편의 사업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고 , 아이는 그때마다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 고등학교 무렵 , 낯선 지역으로 전학을 가면서 아이는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어했다 . 그즈음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 무리해서 일을 돕던 나는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 수술 후 , 강원도 산골로 요양을 떠났고 남편은 생계를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 .
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 진로와 입시를 비롯한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 고 3 이라는 가장 힘든 시기를 혼자서 헤쳐나가고 있었다 . 돌이켜보면 , 그 어린 마음으로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을까 .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린다 .
그러던 어느 날 , 아이가 조용히 강원도 산골까지 나를 찾아왔다 .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 굳이 말하지 않아도 , 마음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날의 침묵은 오래 남았고 , 서로의 곁에 머무는 그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이 충분했다 .
지금 아이는 대학 4 학년이다 . 입학 후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 장학금으로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며 성실히 살아왔다 . 주말이면 ‘본가’라며 집에 들러 엄마 아빠의 빈틈을 조용히 살핀다 . 무뚝뚝하고 까칠한 구석도 있지만 , 자기 삶을 사랑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든든한 아이다 .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 아이는 의연했다 . 항암 치료로 힘들어하던 나의 발을 주물러 주며 , 내가 조용히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그렇게 고마운 아들이다 .
얼마 전 , 남편이 당뇨 진단을 받았다 . 우린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 살면서 이런저런 병을 겪어왔고 , 이번에도 잘 넘어가리라 믿었다 . 그래서 아들에게도 별일 아닌 듯 전했다 .
“ 괜찮아 . 잘 관리하면 돼 .”
그런데 아들이 울먹이며 갑자기 소리쳤다 . 늘 담담하던 아이였다 .
“ 엄마도 저러고 있는데 아빠까지 아프면 … 나는 어떡하라고 . 나 혼자 되면 … 어떡해 ….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안다고 믿었고 , 다 안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 그 마음 , 얼마나 외로웠을까 . 얼마나 두려웠을까 . 그제야 나는 알았다 . 그 울음이 오래전부터 아이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
‘ 미안하다 . 네 마음 진작 몰라줘서 . 이제는 오래도록 함께할게 .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줄게 .’
그 말조차 하지 못한 채 , 우리는 그저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 사랑은 말보다 침묵 속에서 깊어진다 . 그날 우리는 그것을 배웠다 .
그즈음 , 이현주 선생님께서 ‘나의 묘비명’을 써보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 그 순간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 묘비 앞에 선 아들의 뒷모습이었다 .
“ 왔구나 , 아들 .
하나님께서 엄마 , 아빠에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 .
네가 있어 든든했고 , 참
고마웠다 .
사랑한다 .
언제나 너와 함께인 엄마가 .”
살다 보면 문득 외롭고 지칠 때가 있겠지 .
그럴 땐 이곳에 들러 잠시 숨을 고르고 가렴 .
바람에 실린 엄마 마음을 느껴도 좋고 , 그냥 스쳐 지나가도 괜찮아 .
네가 너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 ,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감사하단다 .
오늘은 , 그 마음을 그냥 품고 있을 수 없어 문자를 보냈다 .
“ 고맙다 . 사랑한다 . 아들 . 네가 있어 참 다행이고 , 늘 감사하다 .”
마리(사랑어린마을공동체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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