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자와 남자가 결혼했습니다. 분명 여러 동성애자 부부가 있었겠지만 공개적 결혼은 이들이 처음이었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이들이 보낸 설 명절은 어땠을까요. 이성애자 부부와는 또다른 고민들을 두고 김조광수 감독이 김승환 배우자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2013년 9월 청계천 광통교 다리 위에서 2000여명의 하객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려 결혼 3년차에 들어선 우리 부부는 지난 설에 각자의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결혼한 부부들은 명절에 시댁에 먼저 갔다가 처가에 들렀다 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배우자의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다. 남자들끼리 결혼을 한 우리 부부에겐 시댁과 처가가 따로 있을 리 없으니 누구의 부모님 댁에 먼저 갈지를 정하는 것도 다른 이들과 같을 수가 없다.
이런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한 그해 추석이었다. 양가의 부모님들이 추석에 어느 집에 먼저 오는지 물었다. 우리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결혼을 하기는 했구나! 8년을 사귀었고 5년 넘게 동거를 했으며 동거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왕래를 했지만 명절에는 그냥 각자의 부모님 댁에 갔던 터라 그해 추석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던 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니 부모님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평등하고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을까? 공개적으로 결혼을 한 동성부부가 없는 대한민국이다 보니 우리 부부에겐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많이 한 끝에 우린 각자의 집에 가기로 했다. ‘시월드, 처월드’와 얽힌 스트레스로 명절이 즐겁지 않다는 이성부부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고 양가 부모님 댁이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 있어 지리적으로 너무 먼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각자의 집에 가기로 했다는 우리의 말에 부모님들은 많이 서운해했다. 하지만 “걔도 (그 집의) 아들이잖아요”라는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는 못하시고 이내 받아들이셨다. 그랬다. 우리는 둘 다 아들이었고 그래서 둘 다 며느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세 번의 추석과 세 번의 설이 지났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가고 있다.
창원에서 설을 쇠고 올라온 나의 배우자 김승환씨는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었다. 창원 부모님(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우리에겐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 장모 같은 호칭이 없다. 그건 모두 이성부부들을 위한 호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원 부모님, 태안 부모님 이렇게 부르고 있다.)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덕분이었는데, 다정하게 짐을 나눠 든 이성부부들 틈에 무거운 짐 혼자 들고 온 그를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동성부부로 사는 것에 대해 물었다. 승환씨, 지금 행복하니?
광수 결혼 3년차인데, 소감이 어때?
승환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공식적인 부부가 된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아. 부모님들도 어느새 ‘아들의 남자친구’에서 새로운 가족구성원(아직 마땅한 호칭은 없지만)으로 받아들였고 언론에서도 부부라고 부르고.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니 이렇게 공식화하게 된 것 같아 뿌듯해. 그리고 같이 미래를 설계하고 모든 걸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 그래서 그런지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아.
광수 혹시 결혼하고 나서 결혼 잘못했다거나, 왜 결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어?
승환 아니, 그런 적 없었어.
광수 정말?
승환 응, 그런데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원래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결혼 후에 확실히 술자리가 줄어들었어. 사람들이 나랑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해.
광수 왜?
승환 유부남이니까.(웃음) 클럽에 가도 사람들이 인사하고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친구들이 그런 자리를 불편해하더라고. 그리고 주로 상담을 많이 해. 어떻게 하면 커플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 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고 결혼하기까지 등등.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해. 나이는 많지 않은데(올해 32) 어느새 왕언니처럼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어. 난 같이 웃고 떠들고 고민을 나누고 싶은데 말야. 그래서 재미가 없을 때가 좀 있어. 그리고 싱글들이 모일 때는 나를 안 불러.(웃음)
광수 나를 만나기 전에는 평범한 공대생이었는데, 전공과 다른 영화 일도 하고(승환씨는 수입영화 배급 전문회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고 공개적인 결혼식까지 하면서 삶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본인 스스로는 어때?
승환 나는 좋아. 전자공학 쪽 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너무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보면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아 보여. 그리고 영화 일이 재미있어.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하루가 너무 빨리 가고 일을 통한 보람도 많이 느끼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느낌을 매일 받아.
광수 30대 초반인데,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승환 (웃음) 그런가? 내가 원래 조숙했어. 아무튼 삶의 만족도는 높아.
광수 그래도 평범하게 살걸 그랬다는 그런 후회는 없어?
승환 어차피 내 성격에 결국 평범하게 못 살았을 거야.(웃음)
광수 왜?
승환 잘 알면서. 나도 당신 못지않게 성격이 강하잖아.(웃음)
광수 인정하는 거야?(웃음) 결혼하면서 친척들에게까지 커밍아웃을 한 셈인데 이번 설에 만났을 때 별일은 없었어?
승환 별일은 없었고 사촌들이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을 섭섭해했어.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건 아니었구나’ 하는 그런 서운함을 이야기하더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고 또 그때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했어. 정신이 너무 없었다고. 우리 결혼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을 보라고도 했어. 그걸 보면 내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단 걸 알게 되니까. 시간이 갈수록 결혼이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서 가족과 가족, 친척들까지 포함한 대가족의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광수 그래서 영화는 봤대? 보고 나서 반응은?
승환 내가 불쌍하다고. 성격 강한 배우자 만나서 고생한다고 그러더라.
광수 뭐? 정말?
승환 (웃음) 농담이야, 좋은 얘기 많이 했어.
광수 명절에 혼자 갔다가 올 때 느낌은 어때? 다른 사람들은 부부가 같이 오는데.
승환 부모님이 당신 얘기를 많이 해. 나도 같이 오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부모님 댁에 뻘쭘하게 있는 매형을 보면서 역시 명절에는 각자의 부모님께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광수 혼자 무거운 거 들고 오기 힘들지 않았어?
승환 잠깐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창원까지 같이 갈 필요는 없지.
광수 음, 이건 솔직하게 얘기해줘. 지금 행복해?
승환 응. 행복해. 그런데 요즘 고민이 좀 있어.
광수 고민? 무슨 고민?
승환 최근에 수입한 영화 <프리헬드>(줄리앤 무어, 엘런 페이지 주연) 배급을 잘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영화들에 비해 규모가 큰 거라서 걱정이 많아. 그리고 우리 결혼식 축의금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는 신나는센터(성소수자를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 일도 잘하고 싶은데, 아직 정부나 지자체에서 성소수자센터에 협조적이지 않고 후원금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성소수자센터처럼 멋진 곳을 만들고 싶은데 말야. 이 기사 보고 사람들이 많이 후원해주었으면 좋겠다.(웃음)
광수 잘될 거야!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거라면, 그 조건에 우리 부부는 딱 맞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결혼은 이성애자들만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처럼 웃으며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언젠가 ‘동성애자는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웃으며 할 날이 올 테니까.
김조광수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