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땅을 시세보다 42배 비싸게 팔았다면 무조건 부당이득죄를 물을 수 있을까?
ㅇ사는 2005년 1월 5만3180㎡ 넓이의 주택재개발사업을 시작했다. 먼저 덩어리가 큰 땅 소유주들과 계약을 서두른 ㅇ사는 전체 부지의 80%를 사들인 뒤 김아무개(47)씨 소유의 땅 40㎡(12평)를 사려고 김씨에게 연락했다. 얼마 안 되는 땅이기 때문에 ㅇ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1991년부터 땅을 소유해 온 김씨는 실제 소유주는 이아무개(46)씨라며 발을 뺐다. 김씨와 말을 맞춘 이씨는 “무조건 협조해 줄 테니 사업계획 승인 신청부터 하라”며 계약에 응하지 않았다.
ㅇ사는 그해 12월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고 사업자금으로 1천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자 이씨는 “사업비 3300억원 가운데 나에게 몇 십억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으냐”며 무려 78억원을 요구하며 계약에 응하지 않았다. 달마다 6억원의 대출 이자를 무는 ㅇ사로서는 하루빨리 사업을 시작해야 했고, 이듬해 8월 협상 끝에 4400여만원인 시세보다 42배 비싼 18억5천만원을 주고 김씨의 땅을 사들였다.
이후 부당이득죄로 기소당한 김씨와 이씨에게 1·2심 재판부는 “ㅇ사의 급박한 상태를 이용해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개발사업이 추진되기 오래전부터 토지를 소유해 왔는데, 이를 매도하라는 제안을 거부하다가 큰 이득을 취했다는 사정만으로 함부로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가 문제의 땅을 오래전부터 소유했기 때문에 “ㅇ사가 궁박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김씨 등이 제공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민사소송에서는 김씨가 ㅇ사에 16억1천만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이제까지 13건의 ‘알박기’ 관련 사건에서 3건에 유죄를, 10건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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