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사회·예방의학)는 지난 30년간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을 ‘치료’에서 ‘예방과 돌봄’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는 1990년대 초 인천의 가난한 달동네에서 주민들과 함께 ‘평화의원’을 세우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복지사협) 운동의 기틀을 닦았다. 의료적 처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빈곤층의 삶을 목격하며, 의료와 일상 돌봄이 결합한 주치의 모델을 구체화했다.
지난 15일 인천 중구 신흥동 인하대병원에서 만난 임 교수는 오는 3월 시행을 앞둔 ‘돌봄통합지원법’의 실질적 해답으로 ‘다학제 주치의 팀제’를 꼽았다. 그는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의료 취약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일차의료 의사의 수가 부족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의 권한을 간호사나 케어매니저 등 전문 인력에 나누고 팀 단위로 협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복지사협 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1990년대 인천 부평구 부개동 달동네에서 활동할 때, 한 노부부가 동시에 쓰러져 욕창이 생기고 식사도 못 하는 처참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때 의료적 처치와 일상의 돌봄이 결합하지 않으면 환자의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후 주민들과 함께 서로를 돌보는 협동조합 기반의 의료 모델을 시작했다.”
임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일차 의료와 주치의 제도, 커뮤니티케어, 사회적경제 조직을 결합한 ‘지역사회 기반 통합돌봄’ 모델을 확산시켜왔다. 한국커뮤니티케어보건의료협의회 상임대표, 인하대 의과대학 학장 및 보건대학원 원장에 이어, 최근 한국커뮤니티케어협회 회장을 맡아 지역사회 일차 의료와 커뮤니티케어 전문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의료복지사협이 지난 30년 동안 거둔 주요 성과를 꼽는다면?
“불모지에서 ‘환자 중심 의료’와 ‘주치의제’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한 시간이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사회적 일자리로 재가케어사업단을 시작했고, 민간에서 먼저 시행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은 이후 ‘장애인건강권법’ 제정의 기초가 됐다. 또한, 최근 정부의 재택의료센터 사업에 20여개의 의료복지사협이 참여해 지역사회 정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사 결과 의료복지사협은 일반 의료기관보다 의료비를 절감하면서도 환자 만족도는 훨씬 높다는 점을 입증했다.”
한국이 시장 중심의 복지 시스템에서 벗어나, 협동조합과 같은 비영리 주체와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공공 돌봄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임 교수는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은 개신교의 ‘디아코니아’나 가톨릭의 ‘카리타스’ 등 6개 비영리 사회단체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운영하도록 하되 돌봄 서비스의 질을 엄격히 관리한다. 일본의 경우 2000년부터 케어매니저 제도를 도입해 전문적인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지역 포괄케어 센터의 80%를 비영리단체(NPO)가 위탁 운영한다. 민간이 실질적인 서비스 제공을 주도하고 행정이 이를 뒷받침하는 민관 협치 모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치의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수가 체계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가 진료 횟수를 늘려야 수익이 나는 구조라 예방과 상담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를 환자의 건강 수준이 높아지면 보상하는 ‘가치 기반 수가제’로 전환해야 한다. 가치 기반 수가제란 진료 횟수가 아니라, 환자가 응급실에 덜 가고 입원을 적게 하는 등 건강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평가해 보상해야 방식이다. 또한,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협력하는 ‘다학제 팀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건비와 관리비를 수가에 반영해야 한다.”

―의사 정원 확대 문제와 관련해 제언하면?
“의사 교육 과정의 근본적인 개편이 시급하다. 현재는 성적 위주로 의사를 뽑고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구조라 의사들이 보상 심리에 매몰되기 쉽다. 독일, 쿠바의 사례처럼 지역사회에 헌신할 의지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 환경을 국가가 지원해 ‘공공성을 갖춘 의사’를 길러내야 한다.”
―통합돌봄 시대에 의료복지사협의 역할은?
“정부의 통합돌봄 정책은 인력을 배치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현장에서 서비스를 직접 수행할 주체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의료복지사협은 이미 30년 전부터 의료와 복지를 현장에서 연계해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복지사협을 핵심 ‘정책 파트너’로 인식하고, 이들이 구축한 돌봄 생태계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사협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자 임 교수는 ‘협동 문화를 통한 공동체 회복’이라고 답했다. 그는 “의료복지사협은 병원만을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라, 협동의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공동체 해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주거와 의료, 돌봄이 촘촘하게 맞물린 ‘협동조합형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박은경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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