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전 한국에서 온 기자 앞에서 옆구리의 총상을 보여주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가 다른 마을 동료 생존자와 함께, 한국인들에게 비극적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일깨운 공로로 리영희상을 받는다.
재단법인 리영희재단(이사장 김효순)은 25일 제13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인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65)씨와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68)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동명이인인 두 탄씨는 각각 8살과 11살 되던 1968년 2월 고향 마을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에 의해 가족 5명씩을 잃고 자신들도 중상을 입었다. 퐁니의 탄씨는 대한민국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하미의 탄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신청한 피해 조사가 가로막힌 뒤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리영희 재단은 리영희상 선정 사유에 대해 “두 분의 활동은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공동체의 회복을 넘어선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비극적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일깨우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며,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기게 한다”며 “특히 리영희 선생은 한국이 베트남전의 진실을 외면하던 시절 권력의 억압에 맞서 전쟁의 참상과 한국군 파병의 부당함을 용기 있게 고발한 선구자였다. 두 분의 응우옌티탄님은 리영희 선생이 알리고자 했던 전쟁의 비극을 증언해 온 분들로 리영희 정신의 계승자”라고 밝혔다. 두 탄씨가 어린 시절에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전쟁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평화 공존을 위한 세계적 연대를 위해 다시 일어선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리영희재단은 설명했다.
리영희재단은 2013년부터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우상을 타파하는 데 평생 매진한 리영희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해오면서 이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리영희상을 시상해왔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에서 외신부장을 지냈던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전쟁을 긍정적으로 보도해달라고 정부가 마련해준 ‘베트남 위문여행’을 거부하고 비판적인 기사를 쓰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리영희 선생이 쓴 ‘베트남 전쟁’(1985, 두레)은 반공 성전으로만 이 전쟁을 보던 대중들의 눈을 뜨게 한 저작으로 꼽힌다.
리영희 선생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이사 겸 논설고문을 지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리영희 선생의 정신을 이어 지난 1999년부터 한국군의 학살과 관계된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보도하는 데 앞장섰다. 두 탄씨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피해를 증언한 매체도 한겨레였다.

두 탄씨는 재단에 보내온 수상소감에서 “이번 수상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퐁니의 탄씨는 “퐁니 마을뿐만 아니라 전쟁의 무고한 피해자들 모두를 위해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란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을 응원해주신 한국 시민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고, 하미의 탄씨는 “하미 마을뿐 아니라 베트남 중부의 다른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피해들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용기를 내어 충실하게 진상조사를 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3일 오후 4시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다. 시상식이 끝난 뒤엔 수상자의 법률대리인이었던 임재성·김남주 변호사와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응우옌응옥뚜옌 다낭 외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등이 참여하는 이야기 마당도 열린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다음은 선정 사유.
선정사유
리영희재단은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제13회 리영희상의 수상자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생존자인 두 분의 응우옌티탄님을 선정했습니다. 두 분은 베트남 전쟁 당시 대한민국 파병부대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알려진 퐁니학살과 하미학살의 피해생존자로서, 2015년부터 현재까지 10년에 걸쳐 베트남과 한국 양국에서 묻혀 있던 전쟁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데 헌신해 오셨습니다.
1968년 8세와 11세의 어린아이였던 두 분은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 중 발생한 총격으로 직계 가족을 포함한 다수의 가족을 잃었으며, 본인들 또한 큰 신체적 상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이후 두 분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가족의 죽음과 육체적 상해는 물론, 사회경제적 빈곤과 심각한 정신적 외상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피해는 반세기를 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음에도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회는 그 고통에 침묵해 왔습니다.
퐁니 마을의 응우옌티탄님은 2015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전국을 다니며 당시의 참혹한 피해와 한국의 책임을 호소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2023년 2월 승소 판결을 받았으며, 이 판결은 2025년 1월 항소심에서도 유지되어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자국 군대에 의한 해외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로, 국가안보 논리에 가려져 있던 진실에 사법적 정의라는 빛을 비춘 기념비적 결과물입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님 역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가 각하결정을 받았음에도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두 분은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증언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내한하여 행정, 입법, 사법부 및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사실 인정과 사죄를 꾸준히 요구해 왔습니다.
두 분의 활동은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공동체의 회복을 넘어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비극적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일깨우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며,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기게 합니다. 특히 리영희 선생은 한국이 베트남전의 진실을 외면하던 시절 권력의 억압에 맞서 전쟁의 참상과 한국군 파병의 부당함을 용기 있게 고발한 선구자였습니다. 두 분의 응우옌티탄님은 리영희 선생이 알리고자 했던 전쟁의 비극을 증언해 온 분들로 리영희 정신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제13회 리영희상 심사위원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921/53_17899854330622_20260921503763.webp)

![[포토] 광화문 앞에 죽은 듯 드러누운 시민들…“메가 프로젝트 중단을”](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919/53_17898162521385_20260919500684.webp)

























![<font color="#FF4000">[단독]</font> 수도권도 공보의 부족…“혼자 40∼80㎞ 순회진료”](https://img.hani.co.kr/imgdb/child/2026/0921/53_17899878872909_2026092150385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