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Luck)은 소득 불평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또 어떤 운이 가장 결정적인 변수일까. 나아가 운에 따른 소득 불평등을 줄이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노력과 재능이 아닌 본인이 어찌할 도리 없는 운이 소득 수준을 좌우하는 사회에선 소득과 소득의 누적인 부를 둘러싼 갈등은 첨예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그 ‘운’이 복권이 아니라 성별이나 가정환경, 출생지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과거 30여년간 심화한 소득 불평등이 경제·금융 불안정을 낳은 주된 배경이라는 점을 밝혀내며 불평등 완화 정책 권고를 이어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번에는 ‘기회 불평등’이란 열쇳말로 소득 불평등을 살핀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여기서 기회는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운과 비슷한 의미로 쓰였으며, ‘운 평등주의’란 철학 사조에 이 보고서는 기대고 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대학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인공지능의 머신러닝 기법이 동원됐다.
연구진은 운을 개인의 성별과 출생지(‘개인 요소’), ‘부모의 출생지’, 부모의 학력과 직업(‘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14살 때 양쪽 부모 존재 여부와 주거 보유 형태, 주거지 위치(‘어린 시절 환경’) 등의 4가지 범주 8가지 세부 요소로 구분했다. 관련 정보가 있는 오이시디 회원국 29곳에 거주하는 25~59살 성인이 분석 대상이다. 한국은 분석 대상에서 빠졌다.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균등화 가구 시장소득 기준) 불평등의 28%는 앞서 언급한 ‘기회의 불평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오이시디는 밝혔다. 소득 불평등 수준이 100이라면 28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소득을 많이 얻거나 얻지 못했고 나머지 72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따른 결과라는 뜻이다. 얼핏 노력과 재능 비중이 크다고 여길지 모르나, 오이시디는 28%에 대해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국가별로 차이도 컸다. 아이슬란드·덴마크·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비교적 운이 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이 가장 낮은 국가군(10% 초반)에 속했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평균을 밑돌았다. 반면 포르투갈·폴란드·룩셈부르크가 평균을 훌쩍 웃돌았고, 운이 소득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운이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비중이 42%로 측정됐다. 오늘날 미국은 더는 ‘기회의 땅’은 아닌 셈이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국가별 기회 불평등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에 수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덴마크 등 비교적 운이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낮은 국가에선 점차 기여도가 상승하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기여도의 하락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에서다.
오이시디 연구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기회 불평등도가 높은 수준으로 수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형 위기가 취약 계층에게 큰 타격을 준 측면이 있고 동시에 이주민 증가와 같은 구조적 변화도 함께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가 내 인생을 결정? 부가 대물림되는 경로

보고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도대체 어떤 운이 소득 불평등에 가장 큰 영향을 줄까’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앞서 언급한 8가지 요소 중 부모의 학력이 성인이 된 자녀의 가구소득에 가장 큰 영향(중위소득 가구 기준)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력이 각각 19%, 16% 비중을 차지했고, 뒤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이 16%, 14%씩 차지했다. 소득 불평등에 28%의 영향을 준 기회 불평등이 100이라고 할 때 부모의 학력과 직업이 64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뒤이어 어릴 때 거주지의 도시화 수준(9%)·어릴 때 거주지의 소유 상태(5%)·부모의 출생지(부 4%, 모 3%), 성별(3%) 순으로 기회 불평등에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성인이 된 자녀가 속한 가구소득이 많을수록 부모의 학력이 미친 영향은 더 컸다. 한 예로 상위 10%에 속하는 가구에 속하는 이의 소득에 영향을 준 부모의 학력 비중은 48%(부모 학력 영향 합산)로 중위소득 가구에 속한 이의 소득에 미친 부모 학력 비중(35%)보다 13%포인트 높았다.
이처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기회 불평등의 핵심 동력이라는 분석 결과는 한 세대의 소득 불평등을 넘어 ‘부의 대물림’이 나타나는 생생한 매커니즘을 드러낸다. 오이시디 연구진은 이런 분석 결과를 ‘원인과 결과’로 해석하기 보단 ‘패턴’으로 이해해달라고 주문했다.
개인 노동소득 기준 분석 땐 성별이 기회 불평등에 가장 큰 영향 줘
연구진은 ‘성별’이 상대적으로 기회 불평등에서 차지하는 몫이 작게 나타난 데 대한 설명도 내놨다. 이는 이번 연구가 불평등 분석의 기본 잣대인 ‘균등화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접근 가능한 장기 가구소득 정보가 주로 아버지와 아들 소득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이유로 연구진은 ‘가구’를 ‘개인’으로, ‘소득’(incomes) 대신 ‘노동소득’(earnings)을 분석 기준으로 삼아 기회 불평등에서 각각의 운이 차지하는 몫도 추산해냈다. 임금 등 노동소득은 개인 또는 가구의 핵심 소득원이긴 하지만 노동소득 중심의 분석은 주식·부동산 등 매매에 따른 차익인 자본 소득이나 상속·증여에 따른 소득은 포괄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 불평등 연구에선 가구소득 중심 분석이 중심을 이룬다.
개인 노동소득을 잣대로한 분석에선, 성별이 압도적으로 기회 불평등에서 차지하는 몫이 컸다. 성별 영향률이 23%로, 아버지의 학력·직업(각 14%)을 크게 웃돌았다. 연구진은 “(노동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wage)의 성별 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개인 노동소득 기준 분석에선 성별에서 비롯된 기회 불평등 수준도 컸다. 여성이 교육과 직업훈련에 대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며 “한 사회에서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크고 이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 취약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국가간 차이는 컸다
소득 불평등은 통상 정부의 개입 즉 조세와 예산 정책으로 완화된다. 관련 연구도 정부가 개입하기 전의 소득인 ‘시장 소득’과 정부 개입 후 소득인 ‘처분가능소득’간 변화를 통해 해당 국가의 조세 재정 정책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우리나라는 오이시디 국가 중 재정의 조정기능이 가장 취약한 국가에 속한다)
‘기회 불평등’을 탐구한 오이시디 연구진도 같은 방법론을 활용해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국가별로 기회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도 추산했다. 그 결과를 보면, 분석 대상 국가 중 아이슬란드가 재정 정책에 따른 기회 불평등 조정률이 39%로 가장 높았고, 덴마크·벨기에(각 38%)·네덜란드(32%)·스웨덴(31%) 등이 뒤를 이었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은 25%이며, 헝가리·스위스·라트비아가 평균을 크게 밑돈 10%대였다. 이 분석은 오이시디 유럽 회원국 23곳만 대상으로 이뤄졌다.
오이시디는 “(각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해당 정책이 기회 불평등에 노출된 쪽에 좀 더 무게를 둔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에선 재정 정책이 고소득층임에도 소수 그룹이라는 이유로 수혜를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이시디는 “취약 계층에 좀 더 지원을 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통합 등과 정책 저항 등을 고려해 제도 자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설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상속·증여세 강화 권고…“정부가 강화 취지 충분히 설명하면 조세 저항도 줄어”
오이시디 연구진은 국가별 기회 불평등을 낳는 요소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짚으며 각 국가에 맞는 불평등 완화를 위한 재정 정책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한편 동시에 정책 수단 중 하나로 상속·증여세(자본이득세 포함) 강화의 중요성을 긴 분량을 할애해 설명했다.
특히 토마 피게티(파리 경제대)·이매뉴얼 사에즈(UC 버클리) 등 불평등 연구의 대가들이 해당 세금이 불평등 완화에 가장 효과적이며 형평성이 높고 행정 비용도 적은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 사실도 소개했다. 또 일부에선 해당 세금은 강력한 조세 저항에 부딪히기 십상이어서 강화가 쉽지 않다는 주장도 편다면서도 일부 국가에선 해당 세금에 대한 강한 지지도 존재하고 있는 점도 함께 전했다. 또 해당 세금이 강화에 따라 낮은 세율의 국가로 부유층이 이민을 대거 떠날 위험이 있다는 가설은 지금껏 그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오이시디는 “상속 증여세 강화가 기회와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측면을 정부가 충실히 설명을 할수록 국민의 정책 지지도 높아진다”며 “다만 상속 증여세 강화에 따른 세수 비중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불평등 완화의 특효약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