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복동 할머니가 서울 영등포구 대방역 5번출구 앞에서 가로 판매대를 차려 장사를 한 자리. 이정규 기자
임복동 할머니가 서울 영등포구 대방역 5번출구 앞에서 가로 판매대를 차려 장사를 한 자리. 이정규 기자

지난달 10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제1별관 법정 복도. 끈이 해진 얼룩무늬 면가방을 멘 임복동(81) 할머니가 지나가는 직원의 팔을 잡고 물었다. “언제 법정으로 들어갈 수 있어유?” 오후 3시20분에 열리기로 한 재판인데 할머니는 점심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임 할머니 손에 들린 서류에는 ‘보도상영업시설물점용허가취소’라는 사건명이 적혀있었다. 1989년부터 34년여년 간 임 할머니는 서울 영등포구 대방역 5번 출구 가로 판매대에서 장사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영업허가를 취소당했다. 세 차례 단속에서 판매대가 닫혀 있어 벌점이 쌓인 탓이다. 서울시 보도상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보면, 시장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 15일 이상 폐점하면 벌점 40점을 부과되고, 누적벌점 120점이 넘으면 즉시 점용허가를 취소한다고 돼 있다.

임 할머니는 2021월 4월 영등포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지난해 8월 1심은 영등포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근거는 네 가지다. ①폐점 통보한 2020년 6월17일 이전부터 임 할머니가 판매대를 창고로 쓰고 실질적인 영업은 지하보도에서 했다. ②임 할머니가 장사를 계속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시민보행과 도시환경을 개선해 얻을 이익이 더 크다. ③행정소송 소제기 기간인 90일을 넘겨 소송을 냈다. ④딸 ㄱ씨가 점용허가와 대부계약을 맺은 주 운영자이고 임 할머니는 보조운영자인데 딸은 실질적으로 판매대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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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진행한 1심에서 패소한 뒤 임 할머니는 판매대 운영을 영영 못할까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 벤치에 앉아 울었다. 그때만 해도 임 할머니는 항소심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양복 입은 50대 남성이 다가와 말했다. “좋은 법이 있는데 왜 울고 계세요. 우리나라는 할머니 같은 분들을 살려준대요.” 그 남성은 할머니와 함께 항소이유서를 써줬다.

판매대는 남편 유산이다. 한국전쟁 때 군대에 다녀온 남편은 허리에 염증이 생겨 움직이는 게 어려워졌다. 결혼 할 때만해도 걸어다녔는데 가만히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허리가 악화됐다. 대신 임 할머니가 풀을 매거나 개천 흙을 삽으로 푸는 공공사업하며 돈을 벌었다. 남편은 가족의 생계가 걱정되니 ‘아내가 돈을 벌게 해달라’며 강북구청에 판매대 운영권을 신청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점이 고려돼 ‘보도영업시설물 점용권’을 얻었다. 추첨을 거쳐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으로 판매대가 정해졌다. 판매대 장사는 1989년부터 시작했다. “(판매대를 남들이) 산다 해도 팔지 말고 해라.” 남편이 유언처럼 할머니에게 건넨 말이었다. 남편은 지병이 악화돼 1990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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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에서 붕어빵 장사가 잘 됐다가 1991년 이후 손님이 줄었다. 대방역 주변 공사로 5번출구로 이어진 지하보도가 다른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붕어빵을 바짝바짝 구웠는데 (안 팔리니까) 쪼글어들어. 붕어가 죽어갔지.” 할머니는 땅콩, 생강절편 등으로 판매상품을 바꿨다.

손님이 뚝 끊겼다. 영등포구청에 찾아가 판매대를 여의도역 인근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자리를 옮겨주겠다고 약속했다가도 담당자가 바뀌면 말이 달라졌다. 임 할머니는 판매대 손님이 없을 때는 대방역 지하보도에서 남은 물건을 팔았다. 들고다니다 땅콩 등이 깨져 취나물 등으로 바꿨다. 어느 날 지하보도에서 나물을 팔다 동작구청 단속반에 모두 빼앗겼다. 이후 오후 7시 이후에만 지하보도로 옮겨갔다. 이렇게 아들 하나, 딸 셋을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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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다시 시작된 항소심 재판. 이번엔 추가 증거를 준비했다. 시간이 되자 임 할머니의 변호인이 도착했다. 법률구조공단이 노령연금 수급자인 할머니에게 소개해 준 변호사다. 임 할머니는 기억자로 굽은 허리로 지팡이를 짚으며 원고석으로 걸어갔다. 꼬리뼈를 다쳐 한쪽 다리는 절뚝거렸다. 항소심 재판장이 말했다. “항소심에 와서 원고(할머니) 쪽에서도 구체적 주장이 나왔습니다. 피고(영등포구청) 처분의 적법성 여부를 두고 원고 쪽에서 추가로 (증거를) 정리해서 냈습니다.”

행정소송 쟁점 가운데 하나는 임 할머니가 판매대를 15일 넘게 닫았는지다. 영등포구청은 임 할머니가 2020년 7월3일부터 31일까지 15일 이상 장기폐점을 했다는 이유로 벌점 40점을 매겼다. 2020년 6월17일, 7월14일, 10월27일에 세 차례 임 할머니의 판매대에 찾아가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누적벌점 120점이 되자 보도상영업시설물 허가 취소를 통보했다.

그러나 임 할머니는 판매대에서 계속 장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도 항소심 준비서면에서 “원고는 척추관협착증 치료를 위해 약 9회에 걸쳐 2~3일 정도 쉬었을 뿐 시설물을 15일 이상 장기간 폐점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주장했다.

임복동 할머니가 손수 써서 재판부에 낸 편지. 재판자료 갈무리.
임복동 할머니가 손수 써서 재판부에 낸 편지. 재판자료 갈무리.

우연히도 영등포구청의 단속은 임 할머니가 꼬리뼈 염증으로 병원에 다녀온 시기와 겹쳤다. 임 할머니는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요양병원을 오갔다. 영등포구청이 단속을 시작한 이튿날인 2020년 6월18일, 두번째 단속날 하루 전인 2020년7월2일, 마지막 단속의 9일 전인 10월16일에도 병원을 다녀왔다. 임 할머니가 판매대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손님들의 증언도 사실확인서로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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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청이 노점 단속한 2020년 7월은 코로나19가 확산돼 치명률이 가장 높았던 때이기도 했다. 2020년 1월20일부터 8월11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1만4660명(일평균 71.5명)이 발생하고 308명이 사망해 치명률은 2.1%에 달했다. 딸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 시국이라 (판매대) 장사를 나가면 (고령인) 엄마에게 당분간은 나오면 안 된다는 시민이 많았다”며 “그런 때에 영등포구청은 장사를 하는지 조사한 것”이라고 했다.

90일 지나 소송을 제기한 것은 구청 직원이 행정소송을 하지 않도록 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ㄱ씨는 2020년 12월21일 구청 직원과 통화했는데, 그가 “행정소송을 안 내면 판매대 해지 안 하겠다”며 “제가 있는 동안, 그리고 후임에게도 얘기를 전달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임 할머니가 장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엄마는 자녀들이 그만두라 해도 우리를 가르칠 수 있던 원동력인 판매대를 끝까지 하고 싶어했다.”(ㄱ씨) 지난 5월24일 임 할머니와 함께 판매대와 대방역 지하보도에 가보니 지나가던 시민 여럿이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임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 장사하다 보니까 팬들이 막 있어. ‘우리 할머니가 나를 축복해주네’ 이래요. 돈이 잘 안 벌려도 계속 하고 싶어유.”

임 할머니의 항소심 선고는 7월5일이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