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 ‘고배출’ 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보험회사들이 정작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천재지변’으로 분류해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보험 약관이 불공정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다.
29일 소비자시민모임과 기후솔루션은 국내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디비(DB)손해보험·현대해상·메리츠화재·케이비(KB)손해보험)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약관 심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문제삼은 약관은 보험회사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개인용 자동차보험’ 약관 속 조항들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분류해 보상을 제한하도록 규정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8조, 14조, 19조, 23조 등이다. 실제 보험금을 지급했는지 여부를 떠나 약관 내용만 살펴보면, 보험회사들은 “지진, 분화, 태풍, 홍수,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규정이 “기후위기로 인한 천재지변에 대해서도 보험회사의 보상금을 면제하고 있다”며, 이는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하고 사업자 부담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으므로 “삭제 또는 수정할 것을 권고”해달라고 공정위에 청구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의 심화로 더 이상 천재지변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가항력적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험회사들이 “예외적으로 천재지변의 경우 보상금을 지급받으려는 소비자에겐 특약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더 나아가 보험회사들이 석탄발전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에 투자해 기후위기를 키우고 있는데, 정작 그런 위기로 피해를 받은 이들에 대한 보상 책임은 다하지 않는 셈이라고도 주장했다. 보험회사들은 화석연료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설비 건설과 운영에 들어가는 각종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운용 자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주식·채권 등의 형태로 이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솔루션은 자체 보고서를 통해 국내 10대 손해보험사의 2020~2023년 화석연료 산업에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한 ‘보험 배출량’이 연평균 약 40만톤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함으로써 발생하는 ‘금융 배출량’은 연간 약 2600만톤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2021년 우리나라 전체 연간 배출량의 약 4%에 해당하는 수치다.

기후솔루션은 “기후위기의 가속화로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수록 전반적인 보험금 지급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며,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하면서 보상 책임은 외면하는 것은 “보험회사 스스로 부담을 키우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2년 여름 수도권에 쏟아진 국지성 폭우로 5천대에 달하는 차량이 침수됐는데, 삼성화재∙현대해상∙케이비손해보험∙디비손해보험 등 4대 보험사에 접수된 피해만으로도 추정 손해액이 약 56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청구인을 대리한 이영주 변호사는 “천재지변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이라는 전제 아래 보험사의 예측 가능성과 경영 안정성을 고려해 면책 약관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어 왔다”며 “그러나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증가에 일부 책임이 있는 보험사를 위해 소비자들이 모든 손해를 떠안는 구조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청구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에 “‘천재지변’에는 해일·지진 등 거대한 재난·전쟁도 포함이 되는데, 이 경우 사실상 모든 물건에 대해 피해가 발생해 보상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에 보험으로 인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현실적으로 홍수와 태풍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으로 표준약관을 제시하고 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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