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맞닥뜨린 분단 체제는 우리나라 정치를 장애로 만들었습니다. 진보 좌파가 불법화되면서 보수 우파는 정권을 장악하고 모든 분야의 기득권을 차지했습니다. 반공, 친미, 독재, 쿠데타는 기득권 세력의 무기였습니다. 반독재 투쟁을 하던 민주개혁 세력이 야당의 명맥을 겨우 이어갔습니다.
1987년 시민혁명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실패했습니다. 1990년 대구·경북 기반의 보수 우파 세력과 부산·경남 기반의 민주개혁 세력이 야합하면서 영남 전체가 기득권 세력으로 넘어갔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맞선 민주개혁 세력은 호남, 재야, 2030 세대의 연대에 성공했습니다. 그 힘으로 1997년, 2002년 연속으로 집권했습니다.
이후 2007년, 2012년, 2017년, 2022년, 2025년 다섯 차례 대선을 치렀습니다. 보수 우파가 세 번 이겼고, 민주개혁이 두 번 이겼습니다. 그 사이에 유권자 지형이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보수 우파 기득권 세력의 입지는 좁아졌고 민주개혁 세력의 입지는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민주개혁 세력은 20~30년 연속 집권에 필요한 ‘다수 연합’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 우파의 기득권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분단 체제와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는 보수 우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 지형입니다.
민주개혁 세력이 조금만 틈을 보여도 보수 우파 기득권 세력은 기기묘묘한 수를 써서 정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증거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12·3 비상계엄으로 3년도 안 돼서 무너졌지만, 다음 대선에서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보수 우파는 민주개혁 세력이 오히려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이라고 주장합니다.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결과를 근거로 내세웁니다. 거짓입니다. 민주개혁 세력을 공격하고 보수 우파를 각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의 2020년 총선 승리는 코로나 덕분이었습니다. 2024년 총선 승리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로 인한 반사이익이었습니다. 소선거구제에서 득표율과 의석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득표율이 조금만 높아도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합니다. 역대 모든 총선이 그랬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였지만,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3석(64%), 미래통합당 84석(33%)이었습니다. 2024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민주당 50.4%, 국민의힘 45.0%였지만,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1석(63%), 국민의힘 90석(35%)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2028년 총선, 다음 대선에서 계속 승리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힘이 설사 6·3 지방선거에서 져도 2028년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2011년 10·25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 탄력으로 겨우 6개월 뒤 2012년 4월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총선 8개월 뒤 대선도 승리했습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뉴 이재명’ 논란이 거셉니다. 강성 당원과 지지층이 두 패로 갈려 원색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공격합니다. 한쪽은 정청래 대표를 지지하는 집단입니다. 다른 쪽은 정청래 대표를 비판하는 집단입니다. 뉴 이재명은 정청래 대표를 비판하는 집단입니다.
뉴 이재명이 떠오른 계기는 정청래 대표가 추진했던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었습니다. 합당에 반대하는 당원과 지지층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합당이 무산됐습니다. 그 이후 갈등이 격화하면서 정청래 대표와 이성윤 최고위원, 최민희 의원이 ‘재명이네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양쪽에서 주고받는 거친 표현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앙일보가 설 연휴 직후 2월 19일 치 신문 5면에 “‘새 주류’ 대 ‘뉴 수박’…여당 지지층, 뉴 이재명 놓고 내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뉴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내전 수준의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설 연휴 기간 여권 성향 커뮤니티와 유튜버 사이에선 ‘민주당의 새 주류 세력’이라는 시각부터 ‘민주당 판 뉴라이트’라는 비난까지 극과 극의 반응이 엇갈렸다.”
뉴 이재명이라는 말은 사실 지난해 9월 한겨레에서 처음 썼습니다. 한국정당학회와 함께 기획한 이재명 정부 100일 유권자 패널조사에서 ‘대선 뒤 새로 유입된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이 확인됐습니다. 기사를 쓴 이세영 정치부장이 이들을 뉴 이재명으로 명명했습니다.

뉴 이재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이세영 부장은 2월 26일 치 신문에 “‘뉴 이재명’은 죄가 없다”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집토끼’(고정 지지층=올드 이재명)에 ‘산토끼’(부동층=뉴 이재명)의 지지를 더해야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덧셈’의 정치 산식이, 집권 여당의 내부 갈라치기용 ‘뺄셈’의 산식, ‘권력투쟁의 언어’가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민주당의 내부 갈등은 심상치 않습니다. 당 지도부, 의원, 당원, 유튜버들이 속속 가세하며 싸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증오와 배제의 칼날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지지층이 분화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8월 당원대회를 앞둔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권력투쟁이 일찌감치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에서 내부 권력투쟁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갈등 관리를 잘못하면 갈등이 내전으로, 내전이 분당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정당사에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김영삼 김대중 양 김 씨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대표적입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죽기 살기로 싸웠고, 결국 동교동계가 뛰쳐나와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양 김 씨는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상납했습니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 2004년 총선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으로 결국 분당했습니다. 자주파의 통합진보당은 해산당했고, 평등파의 정의당은 세가 확 줄었습니다. 평등파에서 자주파를 공격하면서 사용했던 ‘종북’이라는 단어는 보수 우파가 민주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 전체를 싸잡아 색깔론으로 비난하는 흉기가 됐습니다.
2014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도 내부 갈등 관리 실패로 결국 분당한 경우입니다.
반면에 갈등 관리를 잘해서 분열을 막고 지지 기반을 넓힌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친이명박과 친박근혜 세력으로 양분됐습니다. ‘친이’와 ‘친박’은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습니다. 밥그릇 싸움이었습니다. 민주당 10년 집권의 피로감으로 한나라당 대선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이 거의 쪼개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는 유능한 ‘스핀 닥터’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친이’와 ‘친박’의 밥그릇 싸움을 ‘실용 보수’와 ‘정통 보수’의 이념 대결, 노선 투쟁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 후보가 경선 결과에 즉각 승복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박근혜 후보는 ‘경선 승복’이라는 참신한 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박근혜 의원과 친박계 의원들이 야당 역할을 했습니다. 진짜 야당인 민주당은 존재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민주당은 뉴 이재명 논란이라는 당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할까요? 앞선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뉴 이재명 논란은 차기 당권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지만, 노선 투쟁 성격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과 사법부 개혁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합니다. 당권파는 검찰과 사법부를 확실히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뉴 이재명 세력은 검찰과 사법부 개혁이 이재명 대통령의 민생 중심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는 민주개혁 노선입니다. 뉴 이재명 세력은 중도 실용 노선입니다. 바로 여기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민주개혁 노선과 중도 실용 노선이 토론으로 정책에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아 나갈 때 민주당의 외연 확장과 재집권이 가능해집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3월15일 국회에서 ‘뉴 이재명을 논하다-뉴 이재명 바람과 민주당 외연 확장 전략’을 주제로 토론회를 합니다. 증오와 배제를 자제하고 민주당 외연 확장 방안을 찾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승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 더 높은 상태로 발전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민주당에서 지금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밥그릇 싸움에 그치면 뉴 이재명 세력과 당권파는 공멸할 수도 있습니다. 실용과 민주의 가치 대결, 중도와 진보의 이념 대결, 민생과 개혁의 정책 대결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당 전체의 기반이 단단해지고 넓어질 것입니다. 그래야 민주당의 연속 집권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