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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왼쪽)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선고한 뒤 김형두 재판관과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왼쪽)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선고한 뒤 김형두 재판관과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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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22분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재임 기간 내내 야당과 협치를 거부했던 윤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는 대신 무력을 동원한 비상계엄을 선택해 민주공화정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탄핵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으로 들었던 국회 상황을 하나하나 전후 사정을 살피는 핀셋 팩트체크를 한 뒤,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줄탄핵과 입법 독주, 2025년도 예산 삭감 시도 등으로 계엄 선포 요건인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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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헌재는 ”피청구인(윤석열) 취임 후 계엄 선포 전까지 국회는 행정안전부 장관·검사·방송통신위원장·감사원장 등에 대해 총 22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명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다”고 했다. 단 2명이 탄핵당한 상황을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 발생’이라는 계엄 선포 요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 주장에 대해서도 “피청구인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률안들은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를 보류하여 그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 등에 대한 잇단 거부권 행사를 통해 입법 자체를 봉쇄한 것이 오히려 파면 근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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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계엄 선포 당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헌재는 “2025년도 예산안은 2024년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던 계엄 선포 당시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결이 있었을 뿐 본회의 의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헌재는 이번 탄핵 결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파면의 중대성’을 따지며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을 다시 한 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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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야당이 주도한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 △일방적 법률안 통과와 거부권 행사 반복 △헌정 사상 최초 증액 없는 감액 예산 국회 예결위 의결 상황을 거론한 뒤, “피청구인(윤석열)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국회의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그러나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는 윤 전 대통령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를 야당과의 협치가 아닌 군 병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이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체를 허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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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4일 대전 서구 둔산동 은하수네거리에 모인 윤석열퇴진대전운동본부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결과를 방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4일 대전 서구 둔산동 은하수네거리에 모인 윤석열퇴진대전운동본부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결과를 방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헌재는 지난해 4·10 총선에서 여당의 기록적 패배가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이 됐다는 판단을 드러냈다. 헌재는 “취임 뒤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되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협치의 자세를 취했다면 국회 상황을 타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스스로 걷어찬 뒤, 선거 결과를 계엄을 통해 바꾸려 했다는 취지다.

헌재는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부권 행사 등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자구책 등이 있음에도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밝혔다.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해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의회 폭주와 정치적 폭거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점도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파면된 것은 다시는 없어야 할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다.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어 “더 이상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가 국민과 국가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