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꽃처럼 화사한 웃음이었다. 10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오랜만에 얼굴을 활짝 폈다. 지난해 8월 당내 경선 때 “깨끗이 승복하겠다”며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선 뒤 그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경선 때 자신의 편에 섰던 당직자들이 인사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언급하며 “저를 도운 것이 죄입니까”라고 반문할 때는 울분이 느껴졌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 출마로 이명박 대통령이 휘청거릴 때 “이 총재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표정은 비장했다. 지난달 말 “모두 속았다”며 울분을 토로할 때는 처연함마저 감돌았다.
선거운동 기간 대구에서 조용히 둥지를 틀고 앉아 ‘영남의 박풍’을 일으킨 그는 이날 선거 홍보차량에 올라 지역구인 달성군 옥포면·논공읍·현풍면 일대를 돌았다. 잔잔한 눈웃음으로 유권자들에게 당선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정치적 메시지는 철저히 삼갔다. 총선 평가나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친박연대’ 소속인 홍사덕(대구 서구), 박종근(대구 달서갑) 당선자가 박 전 대표 자택을 찾았으나, 그는 당선된 친박 후보들의 복당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 당선자는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 표심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반영해 (당을) 잘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앞으로 박 전 대표는 절제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것을 보인다. ‘박근혜’란 꼬리표를 달고 원내로 진입한 자파 인사가 60명 가량 되지만, 이들은 당 안팎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잖아도 박 전 대표는 공천 탈락에 반발해 당을 뛰쳐나간 자파 인사들을 두둔하는 모양새를 보여 당내에서 해당행위가 아니냐는 원성이 터져나왔다. 친박연대 또는 친박 성향의 무소속 출마자들을 당내로 끌어들여 자신의 세를 불리기 위해선, “당을 위하는 행동”이라는 명분이 먹혀야 한다. 이명박계가 대타협을 요청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직접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는 경선·대선·총선을 거치며 ‘이명박’을 ‘학습’했다. 이젠 그저 참고 기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근혜계의 한 인사는 “공천 파동 당선자들이 국민 심판을 받았고, 친박 무소속 후보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당도 아슬아슬한 과반을 이뤘으니 복당을 시켜줘야 한다고 직접 설득에 나설 수 있다. 이를 위해 오는 7월 직접 당 대표 경선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성연철, 박주희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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