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에서도 혼신을 다해 험난한 길을 가겠습니다!”

‘두루마기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54·경남 사천) 후보가 한나라당의 실세인 이방호(63) 후보를 꺾는 ‘대형 사고’를 쳤다. 제18대 총선에서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강 당선자는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형국에서 서민을 대변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며 “당선의 기쁨을 말하기보다 17대 국회에서 했던 것처럼 혼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먼저 다지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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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당선자는 그의 말처럼 오랫동안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그는 1971년 사천농고(현 경남자영고)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젖소를 키우고 과수원을 일구며 농촌 현실에 눈을 떴다. 76년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든 그는 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장, 사천시 농민회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등을 지내는 등 우리나라 대표적 농민운동가로 활약했다.

지난 2001년 10월3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남도청을 방문해 도민 초청 오찬간담회를 열었을 때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의장 자격으로 참석했던 일은 유명하다. 그는 행사 도중 갑자기 벌떡 일어나 “농사꾼으로서 대통령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했다가 그대로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갔다. 당시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호소하려던 그의 호주머니에는 머리띠까지 준비돼 있었다. 89년부터는 전국농촌총각 결혼대책위원장을 맡아 “농촌총각들의 결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깎지 않겠다”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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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민주노동당 강기갑, 권영길 후보 당선에 환호성

강 당선자는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뒤에도 가족을 고향에 놔둔 채 혼자 서울에서 지내며 의정활동을 벌였다. “농민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며 두루마기와 흰고무신을 고집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농민이든, 노동자든, 빈민이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 곁에 누구보다 먼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달려가곤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 때 맨 앞줄에 서 있던 그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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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로 방향을 바꿔 한나라당 사무총장인 재선의 이방호 후보와 정면승부를 펼쳤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그는 이 후보에게 밀려 아쉽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후보를 누르고 민주노동당에 소중한 지역구 한 석을 보탰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강 당선자는 젊은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징인 두루마기를 청바지로 갈아입고 ‘텔미춤’까지 추며 거리유세를 벌였다. 민주노동당은 강 당선자 지역구를 집중 지원했고, 일부 박근혜 지지자들의 지지선언도 그에게는 힘이 됐다. ‘강자’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재선에 성공한 강 당선자는 18대 국회에서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농민운동계의 대표이자, 민주노동당의 얼굴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도 더욱 무거워졌다.

강 당선자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못된 지역당의 병폐를 지역 주민들이 뜯어고쳐 줬다”며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희망을 일구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천/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