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격과 분노와 비통 속에 2024년이 저물고 을사년 새해가 찾아왔다. 국민 모두가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 위로를 나누며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 게 소박하지만 절실한 새해 소망이다. 새해 여명에 드리운 안개를 헤치고 대한민국은 다시 나아가야 한다.
자명한 사실이 있다. 12·3 내란사태를 정리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내란이 야기한 헌정의 혼란, 경제의 불확실성, 외교·안보의 불안은 내란 종식 때까지 계속 국민 삶과 나라 미래를 옥죌 것이다. 이를 매듭짓는 길은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 윤석열을 탄핵심판으로 파면 선고하고 국법에 따라 준엄하게 처벌하는 것뿐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정계선·조한창 2명을 임명했다. 야당이 추천한 마은혁 후보자 임명은 여야 합의 때까지 보류했다. 일단 헌법재판소 심리·결정을 위한 정족수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으나, 최 권한대행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모두 임명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며 월권이다. 나머지 1명도 속히 임명해야 한다. 동시에 헌재는 속히 심리를 진행해 하루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날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체포영장도 발부됐다. 윤 대통령 쪽은 그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며 소환조사를 거부해왔지만 법원이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더 이상 수사에 불응할 명분은 사라졌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마저 ‘불법·무효’라며 저항하는 건 법치를 부정하는 무도한 행위다. 공수처는 속히 영장을 집행해야 한다. 만에 하나 경호처를 통해 물리적 저항을 한다면 이는 공무집행방해를 넘어 또 하나의 국헌문란 내란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날 최 권한대행은 내란·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옳지 않다. 국회가 두 특검법을 통과시켜 내란사태를 조속히 정리하길 바란다.
내란사태 조기 수습의 가장 큰 걸림돌은 윤 대통령과 함께하는 여당이다. 새로 국민의힘을 이끌게 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12·3 내란사태와 관련해 “(당 차원의) 대국민 사과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윤상현 의원은 극우 집회에 나가 “탄핵을 막지 못해 사죄한다”며 큰절을 했다. 이렇게 ‘내란 옹호 정당’의 길을 갈수록 국민의힘은 대다수 민심과 멀어지며 극우 지역정당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보수의 기본 가치조차 저버린 윤 대통령과 함께 몰락할 생각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탄핵심판과 내란 수사에 대한 방해를 멈춰야 한다.
아울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채 새해를 맞았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힘 모아 참사를 수습하고 유족을 보듬어도 모자랄 판이다. 사고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데 범정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여야가 31일 민생 현안 논의를 위한 ‘국정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하고, 국회 차원의 대책위 구성에도 합의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해 우리 경제에는 겹겹이 난관이 쌓여 있다. 이미 빨간불이 들어와 있던 한국 경제에 내란사태는 더 큰 충격파를 던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0일 1472.50원으로 장을 마쳤다. 외환위기였던 1997년(163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연말 종가다. 코스피 역시 2400선 밑(2399.49)으로 떨어지며 폐장했다. 연초와 비교해 9.6%나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애초 2.1%였던 새해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낮춘 데 이어, 내란사태 이후 기대치를 더 낮췄다. 소비·투자심리는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탄핵을 조기에 마무리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만이 경제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더 커져 있다. 1월20일 취임하는 2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매우 공세적인 대외 정책을 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임기 시작과 함께 시작될 ‘관세 인상’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1기 때처럼 중국과 주변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펼치면 한국 경제는 다시 한번 큰 고통을 받게 된다. 나아가 지난해 한·미 당국이 타결한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기 위해 주한미군 감축 등의 요구를 해올 수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온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대상으로 한 ‘디리스킹’ 요구도 한층 더 거세질 게 분명하다. 내란사태가 장기화되면 사령탑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대외적 위험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란사태로 나라에 온통 멍이 들었다. 국민 마음에도 멍이 가시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힘들게 하지 말고, 내란 극복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그 길은 헌법 제1조가 명하듯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내란을 막아낸 것도 국민이었듯 멍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도 국민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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