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오후 통화를 했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4일 취임한 이후 11일 만에 이뤄진 한-일 정상 간의 첫 소통이다.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약 30분 동안의 통화에서 양국 간의 현안을 두루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로서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엄중한 안보 상황 하에 한-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을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문 대통령의 말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양국 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외교당국 간 협의와 소통을 가속화하자”고 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 분들이 납득하면서도 외교 관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가 통화 뒤 기자들에게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소송에 대해 한국 쪽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한국이 해법을 내놓으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중국, 인도, 영국 순서로 정상 통화를 한 뒤에야 이날 문 대통령과 통화했다. 31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저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된 행보라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한다. 기시다 총리가 국내 정치 문제 때문에 한-일 관계의 첫 단추를 이런 식으로 끼운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와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때문에 일본 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비판이 높은데도, 일본 정치인들이 한-일 관계 개선을 한국에 대한 양보로 여기면서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한국도 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국민 여론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은 한-일 관계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중 ‘신냉전’과 국제 질서의 대전환, 동아시아의 긴장 고조와 군비 경쟁 속에서 두 나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정부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서로에 대한 우호적인 문화적 관심이 커졌다. 서두르지 않더라도 더 이상의 관계 악화를 막고 해법을 찾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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