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실종 104일 만에 장미란씨 주검이 발견된 제주시 한림읍에서 경찰이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실종 104일 만에 장미란씨 주검이 발견된 제주시 한림읍에서 경찰이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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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답답한 마음으로 뉴스를 새로고침 하다가 멈췄다. 지난 24일 오전 10시46분, 경찰과 민·관·군 400여명이 수색을 시작하고 1시간 뒤 주검을 발견했다. 5월부터 100일 넘게 실종되었던 장미란씨다. 그가 발견된 제주 한림읍 수원리는 몇해 전 제주 한달살기로 내가 머문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한림에서 한 여성이 겪은 일은 무엇인가. 폭염을 지났을 죽음과 육체를 생각한다. 아주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누가 어떤 일을 겪었나? 이것을 알아야 하는데 모를 때가 있다. 사망 또는 실종, 폭력이 발생했거나 추정되는 경우 모든 시민은 경찰에 도움을 청한다. 이번에 경악한 일은 신고 당일 담당 경찰이 “대상자와 연락이 닿았다”면서 사건을 실종 프로파일링 전산시스템에서 ‘실종 해제’ 처리했다는 것이다. 담당자는 실종자와 통화한 기록이 없었다. 경찰은 실무자가 단독으로 ‘변사’ 등 사유를 입력하면 상급자 결재 없이 실종 해제가 가능했던 시스템을 이제야 바꾸겠다고 한다. 하지만 112 신고를 하거나, 실종 신고를 하거나, 고발을 하거나, 고소를 하는 등 경찰에 사건을 알렸는데, 이런 사안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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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재차 실종 신고를 했던 장미란씨 가족은 8월19일 공개 전단지를 배포했다. 사진, 이름과 나이, 실종 장소, 특징, 연락처를 기재했다. 가족이 아는 것을 모두 적고 공개했다.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난 23일 실종자 가족은 한 언론에 말했다. “기자들보다 실종 사건 당사자인 가족들이 아는 게 없다”, “현재 실종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에게 ‘기지국 조회 동선과 시간을 공유받을 수 있을지’ 여쭈었는데 수사 내용이라서 가족이어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답답하다. 실종자의 마지막 동선과 시간을 가족에게 알리면 수사가 불가능해지는가? 사건 조사와 규명이 오염되는가? 석달 넘게 실종 상태라 하루가 천년 같을 가족들, 얼굴과 이름, 연락처 등 모든 것을 공개한 그들에게 이 자료는 왜 공유되어선 안 되는가? 가족들끼리만 알고 있어야 한다면 유의 사항을 덧붙여 제공할 수 있지 않나. 합리적인 이유를 떠올릴 수 없다. 왜 기자들에게는 하나둘씩 사건 정보를 흘려주면서 실종자 가족에겐 기밀로 덮어두는가.

“수사 기밀입니다.” 이것은 경찰의 오랜 대답이었다. 폭력, 신체 훼손,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조차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이때 모든 시민은 경찰에 호소하지만 수사당국은 수집한 사실 자료를 ‘기밀’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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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에 한정해도 답답한 경우가 너무 많다. 만취한 상태로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옷을 도구로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거리나 차 안에서 불법 촬영이 있었는지,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피해자를 운반한 것은 아닌지 혼란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경찰이 확인한 디엔에이(DNA) 결과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클라우드나 각종 저장장치에 보관된 자료의 유무는 피해자와 가족 등 당사자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직접 겪은 범죄에 대한 사실관계를 당사자가 모르고 있을 때, 경찰이 확보한 사실 자료들을 피해자에게 ‘수사 기밀’이라고 공개하지 않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첫째, 피해자가 겪은 일이다. 둘째, 달라지거나 변형시킬 수 없는 사실에 대한 기록물이다. 셋째, 훼손할 수 없도록 경찰이 최초 확보한 상태다. 이 밖에 우려되는 부분은 주의 사항을 통해 관리하면 되는데, 일방적으로 수사 기밀로 다루는 것은 말 그대로 피해자 배제일 뿐이다.

오는 10월2일부터 경찰이 불송치로 종결하는 사건의 경우, 피해자 이의신청을 위한 수사 기록 열람·등사 신청이 가능해진다. 보완수사권 폐지 등이 담겼던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어떤 수사 기록을 어떻게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라고 명하는 수사 기록은 사실관계 확인 자료는 물론, 피의자의 주장과 주요 진술, 경찰의 결정에 대한 근거와 의견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의신청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몰라서는 안 될 사실관계를 당사자에게 알려달라. 피해자가 직접 겪은 일은 피해자에게 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