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영국령 지브롤터의 바위산에 사는 바바리원숭이. 이들의 주식은 인간이 주는 정크푸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영국령 지브롤터의 바위산에 사는 바바리원숭이. 이들의 주식은 인간이 주는 정크푸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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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지난겨울, 타이 동부 카오야이국립공원에 갔을 때다. 야생 코끼리 취재를 마치고 해 질 녘 자동차를 타고 공원을 빠져나가는데, 원숭이 예닐곱마리가 도롯가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떠나는 손님에게 환송 인사라도 하는 듯했다. 몇백미터 가니 또 한 패거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몇백미터 뒤에 만난 이들은 손이라도 흔들 것 같았다. 물론 환송 인사일 리는 없고, ‘가는 마당에 먹이 좀 주쇼’ 쪽에 가까운 행동처럼 보였다.

이들은 북부돼지꼬리원숭이(Macaca leonina)로, 공원 초입 여행자 안내센터를 무대로 삼은 60여마리의 ‘반야생 무리’다. 관광객이 꼭 들르는 이곳에서 일부 원숭이는 기회를 엿보았고, 음식을 건네받거나 빼앗는 방법을 익혔다. 사실 카오야이에 사는 북부돼지꼬리원숭이 가운데 이 무리는 예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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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카오야이국립공원 입구 여행자 안내센터를 주요 행동권역으로 하는 북부돼지꼬리원숭이 한 개체가 도로를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 남종영
타이 카오야이국립공원 입구 여행자 안내센터를 주요 행동권역으로 하는 북부돼지꼬리원숭이 한 개체가 도로를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 남종영

야생의 정통파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사람에게 빌붙진 않을 것이다. 벨기에 리에주대학과 타이 킹몽꿋공과대 연구팀에 따르면, 이 무리는 그저 눌러앉은 게 아니었다. 과일이 흔한 여름에는 원래 하던 대로 숲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따먹고, 과일이 귀한 겨울에는 공원 초입으로 돌아왔다. 다른 말로 관광 비수기에는 숲을, 성수기엔 사람을 이용한, ‘계절성 섭취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마음 착한 이들은 우리가 원숭이를 망쳤다고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야생으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원숭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오히려 변화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틈새를 찾아 성공한 것이 아닐까? 모든 혁신과 진화는 틈새에서 발생한다. 이들은 인간과 동물의 틈새, 문화와 야생의 틈새에서 번성했다. 숲에서 열매 찾으러 다니는 거 지겨워, 위험하고 경쟁도 심해, 고개 숙이고 겨울에만 빌붙어 사는 거야, 이거야말로 원숭이-인간의 윈윈, 다종의 평화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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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영국령 지브롤터의 바바리원숭이(Macaca sylvanus)가 화제가 됐다. 이 관광 도시에도 초콜릿과 햄버거를 받아먹고 사는 혁신가들이 산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묘한 점을 발견했다. 정크푸드를 먹은 원숭이가 한편으로 흙을 한줌 집어먹는 것 아닌가!

지난 3월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을 보면, 흙 먹기는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 정점을 찍었다. 정크푸드를 많이 먹는 무리일수록 흙도 자주 먹었다. 반면, 관광객 접촉이 없는 무리는 흙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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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들이 고른 건 ‘테라로사’라 불리는 붉은 점토였다. 아시다시피 정크푸드는 당과 지방, 염분 함유량이 많고 섬유질은 없다. 흙 먹기는 이 식단의 부산물처럼 보였다. 점토는 위장 벽을 코팅하고 독성 화합물을 흡착해 장내 미생물군을 다시 잡아준다. 부족한 철분도 보충한다. 연구진은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원숭이들이 발명한 민간요법입니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원숭이가 영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세에서 동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생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으로 전제하지만, 카오야이와 지브롤터의 원숭이에게 야생이란 이미 관광객이 흘린 초콜릿이 일부인 풍경이다. 그 풍경 안에서 동물은 마냥 수동적이지 않고 순수한 피해자도 아니다. 새로운 음식에 새로운 대응을 발명하고, 그 대응을 서로에게 가르치며, 한 세대 만에 ‘문화’를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이 행동을 단순한 섭식 이상이 아니라 “인류세 풍경에 대한 기능적·문화적 응답”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이 가져온 음식이 원숭이의 장내 미생물계를 흔들고, 불편이 새로운 행동을 낳고, 행동이 동료들 사이로 전파되어 전통이 됐다.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가 생태계를 보호할 때, 정확히 무엇을 보호하는 것일까? 인간이 닿기 전의 원형일까, 아니면 인간과 부대끼며 새로 만들어진 전통을 포함하는가? 개와 닭과 고양이도 그렇게 인간 곁에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인간의 악행을 숨기려 하는 건 아니다. 카오야이의 혁신가들이 요즈음 달라졌다고 한다. 숲을 떠도는 방랑자 기질을 버리고 영역 동물이 되고 있다는 게다. 이들은 자신의 구역(여행자 안내센터)에 침입하는 원숭이들을 공격적으로 쫓아낸다. 행동 권역은 5분의 1로 줄었다. 머지않아 이들에게는 배타성만 남고 날렵함은 사라질지 모른다. 어쩐지 낯익은 풍경이다. 인류세의 원숭이는 결국 우리를 닮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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