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이종욱 (1945~2006)

스물다섯살에 의대에 입학한 늦깎이 의학도였다. 경기 안양의 성라자로마을에 가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봉사. 한국 환자를 간호하던 일본 사람 가부라키 레이코를 만나 1976년에 결혼을 했다. 안정된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멀리 사모아와 피지에 가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아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 활동을 시작. 1994년 예방백신국장이 돼 소아마비와 전쟁을 선포. 소아마비 발병률을 낮춰 1995년에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 결핵퇴치사업국장이 됐다. 북한을 직접 찾아 6만명을 치료할 결핵약을 공급. 이 일로 많은 나라에서 인망을 얻었다.
2003년 1월에 세계에서 모인 여러 나라 대표가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뽑았다. 이종욱이 6대 사무총장에 당선됐는데 아시아 사람으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 한국 사람으로는 국제기구 선출직 수장에 오른 첫번째.
2003년 7월부터 임기를 시작. 환경을 생각해 소형 하이브리드차를 타고, “가난한 나라도 세계보건기구에 분담금을 낸다”며 비행기 일등석을 타지 않았다. 2004년에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24시간 내내 세계 감염병 정보를 모으는 컨트롤타워를 설치. 3년 동안 60여 나라를 돌며 일을 했다. 2006년에 과로로 쓰러졌다. 세상을 떠난 날이 5월22일. “세계는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추모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전세계로 퍼지던 시절. “사스는 21세기 최초의 새로운 질병이지만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주목한다”고 말했고, 2009년에 신종플루가 돌았다. 2020년 전후로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 때, 이종욱이 만들었던 컨트롤타워가 열일을 했다. 후임 총장의 일 처리가 아쉬울 때마다 세계는 이종욱을 그리워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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