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은 | 국제뉴스팀장
눈을 뜨면 차가운 숫자들이 또 쌓여 있다. 33일째다.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쟁을 시작한 뒤부터다. 이슬람혁명 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까지 이란에서는 어린이 212명을 포함해 1937명이 숨지고 2만4800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이 ‘제2의 전선’으로 만든 레바논에서는 1268명이, 이라크에서도 106명이 사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각각 13명, 24명의 사망자와 200명, 6239명의 부상자가 집계됐다. 인근 중동 국가들에서도 전쟁 희생자가 속출한다.
애초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전 명분은 취약했다. 크게 보면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 제거와 이란 이슬람 정권의 교체를 내걸었는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핵심에서 “이란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표적 사살 이후 권한을 넘겨받은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뿐 아니라 국방부, 정보부, 혁명수비대까지 수뇌부가 줄줄이 사살됐어도 정권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틀어막으면서 그나마 미국·이스라엘이 전쟁을 이어갈 명분이 생기는 듯했으나, 트럼프는 ‘호르무즈 개방은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유럽은 전쟁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참전을 거부하고 중국, 러시아, 유엔도 전쟁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트럼프가 키를 잡은 초강대국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보면 관세전쟁은 서곡에 불과했다. 미국은 이미 이란 핵시설을 한차례 타격한 바 있다. 주권국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대통령을 잡아갈 때만 해도 흉포한 질주는 충분히 극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쌓아온 가치와 규범이 재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은 깡패국가인가”라는 의문이 미국에서도 눈에 띄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본래 ‘깡패국가’ 혹은 ‘불량국가’는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고, 테러를 지원하며, 인권을 유린하고, 국제법을 무시한다’며 미국이 꼽은 잠재적 위협 국가를 부르는 데 사용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앤서니 레이크가 1994년 북한·쿠바·이란·리비아·이라크를 ‘불량국가’로 규정했고, 2001년 9·11 테러 넉달 뒤 연두교서 연설에 나선 조지 더블유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현재는 시리아·이란·북한·쿠바 4개국이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안녕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는 건 이들이 아니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 케네디스쿨 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국이 “약탈적 패권국”이자 “불량국가가 됐다”고 규정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펠로인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깡패 초강대국인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비꼬았다. 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미국보다 시진핑의 중국을 더 신뢰한다는 캐나다(57%), 독일(40%), 영국(42%) 시민들의 응답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계는 최소 3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미래를 지금과 같은 미국과 공존해야 한다. “믿을 수 없는 파트너와 거래할 때는 다소 비용이 들지라도 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월트 교수의 조언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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