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꿀벌이 물어 온 도토리 화분(꽃가루)을 채취하는 모습. 필자 제공
지난 4월 말 꿀벌이 물어 온 도토리 화분(꽃가루)을 채취하는 모습.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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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창 | ㈔한국양봉협회 태안군지부장

 12년 전 연고도 없는 충남 태안으로 특별한 계획도 없이 귀촌했다. 책으로만 공부하다 처음 심고 망한 농작물이 콩과 고추, 마늘이었다. 풀에 치이고 고라니의 식탁이 된 것이 우리 집 밭이었다. 그 이후 어중간한 밭농사 대신 벌통 2군(통)으로 취미 양봉을 시작했다. 처음엔 벌통만 갖다 놓으면 저절로 꿀을 얻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양봉 관련 용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분봉(여왕벌과 꿀벌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 본집을 떠나는 것)이 나는 것을 보고도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꿀벌들이 다른 곳으로 다 도망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해 가을,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열심히 늘려 놓았던 벌통 10군 전부를 말벌에 의해 잃었다. 다음해 다시 시작한 꿀벌들을 또 잃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함부로 했는지 알게 되었다. 양봉 벌통(군) 하나에 2만에서 4만의 꿀벌 개체 수를 생각하면 무수한 생명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2년여를 비싼 수업료를 치러가며 꿀벌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서 아직 양봉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전업농 규모의 평균 200군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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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및 말벌 피해, 집단 폐사로 인하여 양봉 농가들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또한 수입 꿀 확대로 국내산 천연 벌꿀 소비가 줄면서 양봉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몇년째 꿀벌이 사라지고 집단으로 폐사하는 피해가 생겨도 보상을 못 받고 있다. 필자도 올 초 월동 이후 50%가 넘는 꿀벌 폐사로 심한 좌절을 겪었다. 한동안 벌통 근처에도 가기 싫었고 양봉업을 지속할지 고민했다. 공익적 가치라는 자부심이 밥을 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양봉을 하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 꿀벌은 자신이 태어난 방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죽을 때는 그 사회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 멀리 숲으로 가서 생을 마감한다. 여왕 중심의 군집을 이루는 꿀벌의 사회이지만 여왕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엔 백성에 해당하는 일벌들은 그 여왕을 죽이고 바꾸기도 한다. 외부의 말벌이 공격하면 꿀벌들은 숨지 않고 저항하여 싸운다. 장수말벌이 침입하면 몇백마리의 꿀벌이 뭉쳐 열을 내어 적을 죽이고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로 인한 꿀벌들의 피해도 상당하지만, 적이 침입하면 물러서지 않고 서로 연대하여 저항하고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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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등검은말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피해가 전국적으로 심하다. 꿀벌들을 공중에서 잡아가는 등검은말벌을 눈앞에서 놓칠 때면 분노에 몸이 떨릴 정도다. 근처에 양봉 농가가 있다면 하루 종일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며 꿀벌과 연대하는 양봉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숨을 건 싸움과 생존을 위한 투쟁은 비단 꿀벌만의 현실이 아니다. 우리 양봉 농가와 민중들의 삶과도 너무 닮아 있다. 함께하며 불의에 저항하는 꿀벌의 치열한 투쟁 정신은 다시 생각해볼 소중한 가치이다. 꿀벌이 인간 생존의 기본이 되는 농업의 근간임은 더 말해야 무엇 할까. 이는 감정적 측면이나 양봉 농가와 꿀벌에 대한 안타까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부지런하고 착하기만 할 것 같은 꿀벌 중에도 스스로 일하지 않고 다른 벌통의 꿀을 훔치는 도둑벌이 있다. 도봉이라고 표현하는데 도봉이 발생하면 도봉 당하는 벌통의 꿀벌과 훔치는 꿀벌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은 둘 다 죽고 망하게 된다. 인간의 세계도 비슷하며 인간과 다른 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공익적 가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하며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것에서 지켜갈 수 있다. 인간이 배워야 할 꿀벌의 세계는 도봉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찾고 그 사회를 지속해 가는 것이다. 기후 변화의 시작도 결국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욕심보다 작아 보이지만 소중한 꿀벌의 가치를 배우고 지켜가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