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난 5월2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2차 티브이 토론이 있었다. 사회 갈등, 연금, 의료, 기후위기 등 사회 분야 전반에 걸친 공약을 검증하는 시간이었다.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공식 의제로 채택된 것은 처음이었고 전체 토론 시간의 삼분의 일 정도가 사용되었다. 이는 기후위기가 더는 미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임을 반영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다만 오랜 기대가 무색하게도 토론의 내용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공약은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 도롱뇽과 터널 건설, 탈원전과 태양광 보조금 등 지엽적 대립 구조를 교묘히 정치 문제화하고 정작 기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과학과 상식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합리적 기후 정책을 마련한다고 하는 그의 말이 의심스럽게 들렸던 이유일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은 향후 기후위기 ‘완화’를 위한 에너지 전환에 집중되어 있다. 급격하게 변해 가는 국제적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동시에 지역 균형 발전을 포괄하는 정책을 이야기한다. 다만 기후 변화 대응의 또 다른 축으로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는 ‘적응’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 그의 말에 아쉬움이 느껴졌던 이유일 것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 확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미래에 늘어날 에너지 수요와 우리의 편리한 삶을 위해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을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운용과 처리 과정에 존재하는 비가역적 위험 비용은 외면하고 과소평가한다. 그의 말이 무섭게 느껴졌던 이유일 것이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재해 피해자 중심의 기후 불평등과 정의로운 전환에 관해 이야기하며 제한적이지만 적응과 완화 양쪽의 의제를 아우른다. 하지만 근거와 현실이 결여되어 있는 선언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비전을 엿볼 수 없었음은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어지는 토론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지엽적인 논쟁에 매몰되다시피 했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요소 중 하나이다. 하지만 완화의 측면에 존재하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 기후위기 대응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 구조 변화, 사회적 불평등 해소 등 완화와 적응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적인 논의는 부족했고 일부 후보들은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새가 날기 위해서 좌우 두 날개가 균형 있게 움직여야 하듯, 사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인식 역시 치우치지 않아야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은유이다. 기후위기 대응 또한 마찬가지다. 완화의 날개만으로는 안전이 없고 적응의 날개만으로는 미래가 없다. 완화와 적응의 균형이 잡혀야 비로소 보다 안전한 기후 미래를 향해 날아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완화와 적응 전략의 최적화는 경제적으로도 남는 장사다. 글로벌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인 기후정책이니셔티브(CPI)의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액이 세계적으로 최대 320경원에 이를 수 있다. 다만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면 피해를 150경 정도로 줄일 수 있고 그때 필요한 비용은 40경이 채 되지 않는다.
이번 대선 토론은 기후위기가 정치의 중심 의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나 정치권의 고민은 여전히 부족했다. 장장 두시간에 걸친 사회 분야 전체 토론의 마무리 발언으로 각 후보는 헌정 질서 회복, 민주주의 수호, 사회 불평등 해소, 구태정치 청산 등을 이야기했다. 물론 매우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기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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