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지난 2일(현지시각)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발표되고 있는 샤오미 15 시리즈.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각)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발표되고 있는 샤오미 15 시리즈. 로이터 연합뉴스
광고

손재권 | 더밀크 대표

 “중국 샤오미나 아너, 화웨이 스마트폰 전시관에 갔다가 삼성전자 전시관을 보니 그저 서울 강남역 휴대폰 매장에 온 것 같았다. 기술 혁신의 차이가 눈에 확 띄게 보인다.”

지난 3월3일부터 7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엠더블유시(MWC) 2025 현장에서 한 정부 관계자가 던진 한마디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이후 중국 기술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기술 헤게모니의 지각변동을 확인한 것이다.

광고

전시장에서 화웨이, 샤오미, 중싱통신(ZTE), 차이나텔레콤 등 약 300개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리드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과거 ‘빠른 추격자’로 분류되던 중국 기업들은 네트워크 인프라, 인공지능(AI) 칩, 전기차, 엑스알(XR) 디바이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 기술 비전을 제시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전시를 압도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중국의 추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우리를 추월했고, 글로벌 시장과 기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광고
광고

조성대 삼성전자 엠엑스(MX)사업부 부사장도 기자회견에서 “중국폰이건 어디 폰이건 신제품이 나오면 다 벤치마킹한다. 혹시나 배울 게 있다면 어떻게 반영하면 좋을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인정한 상징적 발언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기술 제재를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화웨이는 세계 최초의 ‘5세대 어드밴스트’(5G-A)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콰푸’(쿠아보)를 공개했고, 1만5천㎞ 떨어진 중국의 자동차를 원격으로 운전해서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한때 ‘대륙의 실수’로 불리던 샤오미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샤오미15 울트라’를 1499유로(약 236만원)에 내놨는데, 이는 삼성 갤럭시보다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시속 350㎞에 이르는 슈퍼카급 전기차 ‘SU7 울트라’도 선보였다. 나아가 휴대폰 제조사 아너는 향후 5년간 100억달러(약 14조5천억원)를 투자해 글로벌 인공지능 생태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선언했다. 이들은 미국의 부품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지향한다.

광고

이뿐만이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엠더블유시에 전시관이 없는데도 큰 존재감을 과시한 기업이 있었다. 바로 중국의 거대언어모델(LLM) ‘딥시크’였다. 딥시크는 전시는 물론 발표조차 하지 않았지만, 중국 기술 생태계에 깊이 파고든 것으로 확인됐다. 화웨이를 비롯해 적어도 3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딥시크가 내장된 기기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이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 제재를 계속하면 딥시크와 중국산 인공지능 칩이 결합한 서버의 도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엔비디아와 미국 중심의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줄이고, 자체 인공지능 생태계를 완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시의 교훈은 명확하다. 더 이상 ‘중국을 앞서기 위한’ 경쟁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애플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닌 프리미엄 브랜드 경험을 구축했듯이, 한국 기업들은 기술, 브랜드, 서비스를 결합한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술이 평준화된 시대에는 브랜드, 사용자 경험, 서비스, 생태계가 차이를 만든다. 과거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따라 하기’ 전략을 구사했던 한국 기업과 제품은 ‘따라잡히는’ 입장이 됐다. 중국과의 기술, 가격 경쟁이 아닌 한국만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차별화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