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자식이 몸져누운 아버지 옆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야죠.(눈물을 훔친다) 그런데 아버지. 이 집이랑 고향 땅은 저 주시는 거죠? 엄마 말로는 그것 말고도 뭐가 많다던데. …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어차피 이제 회복은 어려우신 거 아녜요?”
삼류 통속극 같은 대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아버지’의 자리에 북극을 놓아보자. 북극을 대하는 아주 익숙한 우리의 서사로 들릴 테니.
온실가스가 치솟고 기온이 오르더니 결국 북극해가 열리기 시작했다. 지구 꼭대기에서 번번이 인간의 접근을 물리쳤던 도도한 바다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혹자는 이를 ‘북극의 눈물’이라 하고, 누구는 ‘새로운 기회’라 부르는데 스토리는 대개 이런 식이다. 일단, 기후변화로 얼음 면적이 얼마나 줄었는지 이야기한다(저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자못 진지하게 기후전망을 전한다(눈물)-톤을 바꿔 극지가 실은 인류의 보고라고 역설한다-얼음 밑 자원과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열거하며(뭐가 많다던데)-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마무리한다(저도 먹고 살아야죠).
극지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건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북극 정책은 국방·안보에서 경제로 영역을 넓혀 왔다. 2020년 발표된 정책에선 북극을 러시아 경제 성장의 주요 자원기지로 지목한다. 물리적 한계도 뛰어넘고 있다. 2017년 여름, 쇄빙선 없이 선체로 얼음을 밀어 5000㎞ 넘는 연안을 횡단했고, 2021년엔 한겨울에 이 일을 해낸다. ‘멀리 수에즈운하까지 돌아가느라 힘드셨죠? 이제 북극해라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중국도 비슷한 시기 ‘근(近) 북극’이라는 근본 없는 개념과 함께 빙상 실크로드를 발표하며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마침 두 나라가 공들이는 북극해 항로는 북극을 지나는 세 항로(북극해 항로, 북서 항로, 북극횡단 항로) 중 녹는 속도가 제일 빠르다.
미국도 경쟁국 동태를 예의 주시하며 반세기 가까이 북극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7월 발표한 미 국방부 북극전략은 중국 견제를 중심에 뒀다. 빗장 풀린 야욕이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로 노골화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도 2013년부터 북극 계획을 세웠고, 가장 최신 버전이 극지활동진흥기본계획이다. 차세대 쇄빙선으로 미지의 영역에 진출하겠다는데 조선 강국이니 헛물켜는 건 아닐 것이다. 2017년과 2021년 북극해를 지나 푸틴을 기쁘게 한 것도 우리가 건조한 배였다.
북극에 가야 할 경제적 이유는 너무나 많다. 서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항로를 40% 단축할 수 있다. 전 세계 미발견 천연가스의 30%가 북극에 있다 하고, 그린란드엔 희토류도 많다. 극지의 다른 이름은 노다지다.
그런데 여기 빠진 게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의 SSP1-1.9 시나리오다. 2050 탄소중립이 달성되는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북극은 금세기 중반을 지나며 회복 조짐을 보인다. 거의 200개 나라가 약속한 1.5도의 지구는 이런 모습인데, 그렇게 되면 노다지를 다시 북극곰에 양보해야 한다.(어차피 회복은 어려운 거 아녜요?)
지구 평균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영구동토는 400만㎢씩 줄고, 동토에 묻혀있던 탄소는 공기로 빠져나간다. 반사판처럼 하얀 바다얼음 대신 시퍼런 바다가 입을 벌리고 태양빛을 빨아들일 것이다. 기후변화가 극지를 열고, 열린 극지는 전 지구를 기후변화의 벼랑으로 몰 것이다.
극지의 문을 열기 전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미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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