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설 연휴 기간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설 연휴 기간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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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가명) | 경비 노동자

나는 1948년생인데 평생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인생이 꼬여 버렸는데, 복잡한 얘기입니다. 다행히 5년 전부터 내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동갑내기 친구를 사귀게 되어서 지금은 마음 편히 삽니다. 

인생에서 마지막 꿈이 한 4천만~5천만원 마련해서 친구와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는 거예요. 친구에 대한 작은 보답이죠. 수중에 돈은 없어요. 아직 힘이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일자리를 구해서 여행자금을 모으려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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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가로수 같은 생활정보지를 봤죠. 그런데 전화를 하면 사람하고는 연결이 안 되고, 인터넷으로 회원가입을 하라고 해서 미치겠더라고요. 직업소개소 간판이 있는 데를 직접 찾아가니까 소개비로 20만원을 먼저 달라고 해요. 나중에 취업되고 줬어요. 직업소개소에서 나이 때문에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기는 했는데, ‘절대 그런 일 (아파서 일 못 하는) 없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아주 튼튼합니다. 안심했는지 알선을 해줬어요. 처음 갔던 데는 성사가 안 됐고, 두번째로 면접 본 아파트에서는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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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파트 입주자대표자회 회장에게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은 필요 없고, 월급을 현금으로만 달라고 했습니다. 한달 150만원으로 서로 오케이가 됐죠. 그런데 중간에 큰 파견업체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가져왔는데, ‘사인만 해라’ 해서 했고,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일이 재미가 있었어요. 나한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쓰레기 분리수거에 아파트 주변 청소하고, 지하에 내려가서 청소하고 물탱크와 정화조도 확인하고…. 아파트에 소방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명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것도 받았습니다.

나는 즐거운 목표가 있으니까 하자 없이 일을 잘해야 되잖아요. 내가 눈치도 빠르고 해서 나름대로 조심하고, 일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척척 했습니다. 입주자대표자회 회장과 아파트 주민들이 나를 좋아했어요. ‘이번에 오신 분은 오래 하신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어서 경비실에 군것질거리가 떨어지지 않았다니까요.

잘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아파트 앞에 빌라가 있는데 거기 입주자가 이사를 간다고, 우리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 이삿짐 차를 2~3시간 세워도 되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거기 말고는 차를 세울 데가 없으니 그러라고 하고는 점심 먹으러 간 사이에 입주자대표자회 회장이 누구한테 얘기를 듣고 와서는 자기한테 보고도 안 하고 허락을 해줬다고 나를 해고해야 한다고 파견업체에 고했다는 겁니다. 나를 안 자르면 파견업체를 바꾸겠다고까지 했다는 거예요.

파견업체 사장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하는데, 내가 버티면 사장이 곤란해지잖아요.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이틀 동안 인수인계하고 12월31일에 끝을 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 한번으로 자를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앞의 빌라에서 이삿짐 차량 등으로 우리 아파트 상가 주차장을 이용할 때는 20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는데 내가 모르고 그냥 빌려주었던 거예요. 언제는 알아서 척척 잘한다고 칭찬하더니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지난 일들이 막 생각이 나요. 우리 아파트에 손님이 많이 오는 보살님이 계셨는데, 내가 안내를 잘해드려서 그랬는지, 추석에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고 과일을 여러 상자를 주더라고요. 나는 신이 나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가져가라고 하고 대장에게도 한 상자 줬는데…. 정작 입주자대표자회 회장에게는 못 줬어요. 꼭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안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여하튼 돈도 있고 점잖은 사람들이 겉과 속이 참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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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대장은 그런 일자리에는 사흘 만에 사람이 구해진다며 혀를 끌끌 차며 개탄하고, 현금으로 받아야 했던 내 사정이 있어서 법적으로도 대응을 못 하고 둘이 속만 끓이고 있습니다. 파견업체 사장은 자리 나오면 알선해주겠다는데….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파리 목숨도 아니고, 고용관계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라요?

정리 박미경 전태일재단 기획실장·6411의 목소리 자문위원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