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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모여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모여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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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안녕하지 못하다. 민주주의 국가 유권자들은 정치 기구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20%가 안 된다. 유럽연합(EU)에서는 평균 3분의 1 정도만 자신들의 정부를 신뢰한다.

친숙한 것은 무시하게 된다고,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민주적인 후보를 고위직으로 선출하고 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네차례 연속 선거에서 이겼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0여년에 걸쳐 자신한테 권력을 집중시켜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8년 중 17년간 이스라엘 정치의 정상 자리를 지켰다. 또 매우 반민주적인 인사인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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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은 여러 나라에서 쉽게 계엄령을 선포한다. 다른 식으로 도를 넘는 지도자들도 있다. 트럼프는 2020년 자신이 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이듬해 1월 지지자들을 의회로 보내 대선 결과 인증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심지어 2020년 12월에는 백악관 내부에서 계엄령 관련 논의가 있었다. 결국 군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던 그는 마지못해 백악관을 떠났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은 더 충격적이다. 그는 아마 군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트럼프와 달리 비상계엄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은 전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여름부터 실행 시기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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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한국 민주주의는 매우 견고한 것으로 입증됐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과거 비상계엄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에 야당은 모든 권력을 장악하려는 윤 대통령의 시도에 맞서 재빨리 움직인 것 같다.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인 정치 기구, 법원, 시민사회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켰다.

다른 핵심 가드레일로는 문화가 있다. 수치심은 한국 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한국 정치인들과는 달리 트럼프는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전혀 없다. 백악관을 다시 차지하기 위한 그의 선거운동은 자신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고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을 상대로 입증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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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수치심이 부족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지만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수치심을 결여한 지도자는 야당과 관계를 맺고, 정치 제도를 존중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나 푸틴 같은 많은 우파 지도자들처럼 행동했지만, 한국에서는 분명 금지선을 넘는 행위인 계엄을 선포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손에 집중시킬 방법을 찾아낼 정도로 현명하지는 못했다.

정치·경제 연구분석 기관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완전한 민주 국가’에 사는 세계 인구는 8%가 안 된다. 미국 등 50개국은 ‘결함 있는 민주 국가’로 평가됐다. 한국은 가까스로 ‘완전한 민주 국가’로 분류됐다. 한국은 ‘완전한 민주 국가’들 중에서 최악인 ‘정치 문화’의 저평가 탓에 점수가 내려갔다.

슬픈 사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구해내는 한국의 능력이 세계적으로는 갈수록 이례적 사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양극화, 불평등 심화, 군사적 충돌, 기후변화 스트레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주기적 발생은 민주주의 제도를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 같은 곳에서는 수치심 같은 문화적 속성이 어느 정도 억제 구실을 한다.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우익 피플 파워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한국인들이 보여준 것 같은 피플 파워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증명하듯 수치심이라는 요소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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