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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를 열어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를 열어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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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지금 우리는, 금방 끝날 것도 같고 고통스럽게 지속될 것도 같은 모호함 속에서 위태로운 교착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꽉 막힌 도로처럼, 언제 뚫릴지 모를 교착 상태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이 갑갑한 시간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교착 상태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사태의 진전은 없는 상태다. 요 며칠만 보아도 그렇다. 11월14일과 15일, 계속 이어져온 여러 대학 교수·연구자들의 시국 선언에 이어 고려대와 국민대, 강원 지역 교수·연구자들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했다. 비슷한 시기 대통령의 골프장 출입을 취재하던 한 언론사의 기자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어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명목으로 전 정부 인사 4명을 지난달 말 수사 의뢰했다고 18일 밝혔다. 수원지방검찰청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유용’했다고 19일 기소했다. 같은 날 전주대학교와 경북대학교 교수·연구자들의 시국 선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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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20% 선을 넘나들며 고착된 지 오래, 참지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들이 연이어 발표되지만, 반응은 도돌이표처럼 똑같다. 검찰, 경찰, 감사원이 주연 배우로 등장해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민주정에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고소, 고발을 당할 것이고 기소될 것이다. 더 많은 지난 정부 공직자들과 야당 정치인들도 그럴 것이다.

이 교착의 시간이 좀 더 가겠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는, 현 정부가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짧은 단막극을 무한히 반복해서 보여주는 지루한 무대를 보는 것처럼, 이미 이 정부는 집권 초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었고 지켜보는 누구나 다음 출연 배우와 대사를 외울 만큼 반복하고 있다. ‘경찰이, 검찰이, 감사원이 … 했다’라는 대본에 목적어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타협과 양보의 기술도, 연합의 능력도,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갖지 못한 대통령이 사태를 진전시키거나 퇴진의 용단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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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 상태가 길어지겠다고 생각하는 두번째 이유는, 집권당 상황이 2016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 추천장에 직인 날인을 거부하며 청와대 추천 공천관리위원장과 협상을 끌어냈던 일을 기억한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선 김무성 전 대표와 한동훈 현 대표의 정치적 능력과 자산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통령 혹은 대통령 부부에게 제기되는 온갖 가지 의혹에 집권당이 연루된 정도가 질적으로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당시 새누리당은 관여 정도가 낮았고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제기되는 국정농단 의혹에, 국민의힘은 전현직 대표부터 국회의원, 시·도지사, 지방의원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내거나 교착 국면의 출구를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다. ‘명태균 스캔들’로 제기되는 의혹들은 대통령 부부만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조직의 환부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렸다. 그래서 ‘그때는 몰랐다’고 돌아설 여지를 대폭 줄이고 있다.

이 교착을 좀 더 견뎌야 하는 세번째 이유는, 민주정의 시민들인 우리에게 우리 헌정 체제를 버텨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과 108석을 가진 집권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헌법과 법률 체제에서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라고 해도 그렇다. 탄핵을 하든 개헌을 하든 200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감당할 만큼 감당해야만 지나가는 고통의 시간이 있다. 그럴 때 격앙되어 펄펄 뛰다 보면 실수를 하고 사태가 더 지연되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제때 밥 잘 챙겨 먹고 일상을 성실히 살면서, 집회에 나가고 성명서, 탄원서에 서명도 하며 해야 할 말은 꼬박꼬박 하면서 이 시간을 견뎌보려 한다. 이 시간이 고통스러운 여러분들도 부디 건강 챙기시면서 서로 연대하고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