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덕 |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시선이 동북아로 이동함에 따라 동북아 지역의 질서는 다시 급변하고 있다. 이는 국가 역량을 동북아에 투사하려는 양국의 의지에 기반한 지정학적 변화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광역두만강개발계획’(지티아이·GTI·Greater Tumen Initiative)이 있다. 지금 다시 지티아이가 활성화되는 이유는 개발 수요와 질서의 공백 때문이다. 지티아이는 동북 3성의 장기 침체를 해소하려는 중국, 극동을 유라시아 전략의 실질적 축으로 만들려는 러시아, 중·러와 협력을 확대하려는 북한의 이해가 교차하는 공간이자 서구 질서의 사각지대이다. 이는 세 국가의 이해를 충족하며 북·중·러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이 시점에서 지티아이 회원국으로써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선제적 개입이다. 이는 중국·러시아·몽골, 그리고 잠재적으로 북한이 북방에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제도 내부에서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통로다.
한국이 소극적일수록 이 틀은 중국 주도의 지역 질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향후 북한이 참여하더라도 한국이 주도성을 갖기 어려워진다. 지금은 한국이 지티아이 내에서 제도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시점이며, 한국 정부의 거버넌스적 참여는 북방의 새로운 질서 설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티아이 전담 컨트롤타워 또는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중장기 시나리오를 관리해야 한다. 지티아이를 단발성 국제회의가 아니라 전략적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은 실무 워킹그룹, 규범·표준 설계, 국제기구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주도함으로써 중·러·몽골·북한(잠재적 참여자) 사이 중간 조정자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지티아이의 전략적 가치는 남북경제협력과 연결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지티아이와 같은 다자협력체는 남북 간 직접 협력이 막혀 있을 때도 우회적 협력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은 북한의 참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2009년 탈퇴 전까지 지티아이의 회원국이었고, 두만강 유역 협력의 핵심 공간에 있다. 중국 역시 지티아이의 실질적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 한국은 지금부터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지티아이의 내용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환경 관리, 기후·수자원 협력, 보건·방역, 산림·생태 복원, 학술·인적 교류 등은 북한 참여 시에도 정치적 부담 없는 영역이다.
정부는 북한의 지티아이 복귀를 가정한 남북경협 모델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 남북 철도·물류 연결의 단계적 로드맵, 에너지·전력 협력의 소규모 시험 사업, 두만강 유역 관광·접경 지역 공동관리 모델 등이다. 이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즉시 실행 가능한 협력 패키지가 된다.
한국은 북방의 질서가 다시 설계되는 시점에 지티아이 거버넌스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티아이는 남북경협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플랫폼 중 하나이며, 지금은 한국이 그 틀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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