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 위치했던 제2기 진실화해위 입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 위치했던 제2기 진실화해위 입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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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달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행정 공백을 줄이기 위해 오는 26일부터 바로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한다고 한다. 과거사 관련 활동가로서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다. 그러나 3기 출범을 앞두고 정원과 기구 등에 대한 정부 지원단의 구상은 매우 실망스럽고 걱정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2기 진실화해위가 이룬 성과 중 하나는 형제복지원으로 상징되는 시설 피해자와 준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해외 입양 피해자를 조사 대상 집단으로 확인한 것이다. 각각 피해 성격이 달라 전문 역량을 가진 조사관들이 더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관행에 익숙한 행정 관료가 2기 진실화해위를 기준으로 안을 만드는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언어 소통이라는 큰 벽이 작동하는 해외 입양 피해자 등 조사 대상 확대는 새로운 정책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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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인력도 문제지만, 더 큰 걱정은 기록을 관리하는 독립된 부서가 정부 시행령안에 없다는 점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기록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기록은 피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출발이자 끝이다. 기록은 단지 ‘문서 한장’이 아니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는 증거이자 유족에게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매체다. 부모의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수많은 유족들이 그 ‘한장’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오랜 세월을 싸워왔다. 그것은 봉인되고 억압되었던 진실을 풀기 위한 시작이었고, 부정당한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는 과정이었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집착이라 부를 만큼 집요하게 기록 찾기에 매달린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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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기록을 찾는 것만큼 생산된 기록을 잘 보존하고 이용하게 하는 것이 과거 극복에서 필수적인 과제다. 피해자 사후, 그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것은 남겨진 말과 글뿐이다. 과거 기억을 전함으로써 되풀이될지도 모를 불의에 경고음을 울리도록 하는 일을 우리는 흔히 ‘과거 극복의 교육적 효과’라고 부른다. 미래 세대에 진실을 전하고 교육하기 위해 체계적인 기록 관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기록은 한 사회가 성취한 지식·지혜의 축적이다. 문화 자산의 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요즘 세계적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케이-문화’도 이런 문화 자산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봉인을 뚫고 세상에 나온 죽은 자의 수많은 말과 글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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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립된 기록 관리 부서 설치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할 때, 두가지를 관철시켰다. 기존 위원회와 달리 조사 인력의 비중을 확대하고, 독립된 기록관리과를 설치해 운영한 것이다. 이후 친일재산조사위원회나 1기 진실화해위 모두 이 선례를 따랐다. 2000년대 들어 기록 관리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나 기록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되어 제도적으로 확립된 하나의 소중한 성과였다. 연말, 연초가 되면 위원회가 다소 소란스러웠다. 사안이 완료된 심의조서와 결정서, 증거 자료를 정리해서 목록과 함께 기록관리과로 제출하느라 각 부서가 바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관된 목록과 자료가 정확하거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느라 기록 관리 담당자와 각 부서가 신경전을 펼쳤다. 바쁜 조사관 처지로서는 기록 담당자들이 까탈스러운 집단으로 비쳤을 법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진상 규명은 발굴과 생산에서 보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성된 절차를 마무리한다. 이후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장벽을 친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위원회가 생산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한 전범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할 때는 이 성과가 이어지지 않았다. 선례가 있으니 당연히 그것을 따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싸, 기록 관리 전담 부서가 아예 빠져버린 채 기구가 출범한 것이다.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 이뤄낸 성과를 제대로 계승해내는 것 역시 활동가들이 가져야 할 책무다. 이건 단지 과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 문제와 씨름해온 한국 사회, 나아가 국제 사회의 규범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연결되는 사안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더 늦기 전에 정책 결정권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너무 뻔히 보이는 잘못을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