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덕진 | 시민모임 독립 대표
히로시마 원폭 투하 80년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원폭 피해 동포들과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평화의 가치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나가겠다”고 언명했다. 고통의 역사 위에 희망의 약속을 새겼다.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가 어디 이뿐이랴.
2023년 일본을 방문한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100년 전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진상 규명과 한국인 유골 봉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 수장이 일본 총리를 만나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1923년 9월 조소앙 임시정부 외무총장이 학살에 대한 항의 공문을 보낸 이래, 100년 만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1923년 9월1일, 도쿄를 중심으로 간토 일대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가옥 45만채가 파괴됐고,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0만5천여명에 달했다. 엄청난 재해였다. 하지만 더욱 참혹한 재앙은 지진 이후에 발생했다. 천황 칙령에 따라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있다” 등 가짜뉴스가 관헌에 의해 유포되었다. 군인과 경찰, 민간 자경단은 무차별 조선인학살을 자행했다. 전대미문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범죄였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조선인 희생자 수를 6661명으로 추산했다.
얼마 전 일본 참의원 선거, 극우 참정당 유세 현장에서 목격된 장면은 충격이었다. 참정당 지지자가 주위 사람에게 ‘15엔 50전’을 발음해 보라고 요구했다. 102년 전 ‘조선인 감별법’이었다. 당시 발음이 부정확한 조선인을 연행하여 구금하고, 살해하였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여전히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간토 조선인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관련 증거가 없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차고 넘치는 증거를 제시하는 일은 진부하다. 매해 9월1일 일본 매체들은 이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는 보도를 내놓는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소개한다. 일본 시민단체 일조협회는 1973년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50년 넘게 추도식을 열고 있다. 니시자키 마사오 ‘시민단체 봉선화’ 이사는 1982년부터 조선인 집단 학살지 아라카와 강변에 자리잡고 진상 규명과 추도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는 8월31일 도쿄 메이지대에서 간토 조선인·중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다. 지난해에는 무려 1천명 가까운 일본 시민이 이 행사에 운집했다. 일본 정부의 행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차라리 측은하다.
5년째다. 시민모임 독립은 2021년부터 8월이 오면 일본대사관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우리의 요구는 간명하다. 일본은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사과하라. 역사 존중 없이, 진정한 한일우호는 없다. 역사 앞에 겸허하라. 그것이 문명국가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다시 9월1일이 다가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는 윤건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토대학살사건진상 규명특별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1923 간토대학살’ 사진전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역할을 못했다. 간토대학살 피해자의 유족이 아직 계신다. 지금도 현장의, 삶의 일부”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관련 법(특별법)을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1일을 기억하는 대통령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