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19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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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19일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는 등 금융 정책을 대전환하면서, 일본에선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신문은 호외를 발행했고, 시중은행은 아주 소폭이긴 하지만 예금금리를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세계에서도 이례적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8년 만에 끝내고, 단기 정책금리를 -0.1%에서 0~0.1%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일본에선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 인상이라는 큰 변화다.

일본 금융 정책의 물줄기가 달라짐에 따라 시장에선 추가 금리 인상 등 앞으로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금리는 당장 더 오르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시점의 경제·물가 전망을 전제로 한다면 당분간 완화적 금융환경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너스 금리를 끝냈지만, 금리 인상은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 내에선 상징적 의미가 강한 마이너스 금리 해제와 추가 금리 인상은 전혀 다른 논의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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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금융 완화를 떠받치던 정책 중 하나인 장기물 국채금리를 조절하는 ‘수익률 곡선 관리’(YCC)도 사라지지만, 일본은행이 일정 규모의 국책 매입을 계속해 장기금리 급등을 방어할 것이라는 의견도 우세하다. 실제 일본은행은 이날 결정문에서 “지금까지와 대략 같은 정도의 금액으로 장기 국채의 매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엔화 가치 하락(엔저)이 상승(엔고)으로 방향을 틀지도 관심사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엔화 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던 만큼, 일본의 금리가 오르면 엔화 가치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 한 금융기관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장기금리 조절 정책을 폐지하더라도 ‘금융완화 계속’에 중점을 둔 발언이 이어지면 환율은 오히려 엔저로 진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금융완화의 핵심 정책이 없어졌지만, 일본은행이 대량의 국채 매입을 유지하는 등 실태가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엔고로 돌아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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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금리 인상 결정 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하락해 2주만에 1달러당 150엔대에 거래됐다. 교도통신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했으나 미-일의 금리 차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달러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우세해졌다”고 전했다.

일본은행이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는 것은 ‘물가상승→임금 인상’의 선순환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소비·투자 확대→경제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일본 노사정이 임금 인상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2년 연속 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성과를 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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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상이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올해 1월 기준 22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지난해 4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1% 증가했지만,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개인 소비는 0.3%나 감소했다. 소비 부진이 일본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서민들의 체감 경기도 별로 나아지지 못했다. 옷 가게를 하는 60대 여성은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임금 인상보다 고물가 영향이 더 크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에다 총재도 기자회견에서 “소비가 회복되지 않아 하방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신중한 태도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이번 정책 변경으로 디플레이션 탈피라고 말할 수 없다.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디플레이션 탈피 선언’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 거품경제 뒤 1990년대 중반부터 물가 하락, 기업 실적 악화, 임금 정체, 개인 소비 부진 등 악순환이 심화되자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에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바 있다.

한편 일본 시중은행들은 ‘금리가 있는 세상’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됐다며 예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대형 은행인 미쓰비시유에프제이(UFJ)은행은 21일부터 보통예금금리를 0.001%에서 0.02%로 인상하기로 했다. 미쓰이스미토모·미즈호 등 다른 대형 은행도 금리 인상에 나설 예정이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