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틴 수사 자료에 여러 차례 등장한 것을 법무부가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백악관에서 팸 본디 법무부 장관과 그의 보좌관들이 ‘엡스틴 수사 자료에 이름이 나온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본디 장관은 엡스틴 자료 안에는 트럼프를 포함해 수백명의 사람들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풍문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고 트럼프에게 말했다. 보고가 이뤄진 회의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로, 엡스틴 수사 자료에 트럼프의 이름이 있는 것이 회의의 초점은 아니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 회의에서 본디 장관은 법무부가 추가로 엡스틴 수사 자료를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자료 안에 아동 성착취와 피해자의 개인 정보들이 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틴 자료 공개에 대한 법무부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사 자료 안에서 언급됐다는 사실이 곧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트럼프 정부가 엡스틴 자료 공개를 두고 태도를 바꾼 이유를 추정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 본디 장관은 지난 2월 엡스틴의 접대를 받은 명단이 존재하는 것처럼 발언했는데, 이달 들어선 이런 명단은 없고 추가로 공개할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정부가 엡스틴 파일에 트럼프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한 뒤 사안을 덮기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추정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 보도에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이건 월스트리트저널이 이전에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또 다른 가짜 뉴스”라고 밝혔다.
전날 시엔엔(CNN)방송은 1993년 트럼프와 두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엡스틴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같은 해 뉴욕에서 열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행사와 1999년 뉴욕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트럼프와 엡스틴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과 동영상도 입수해 보도했다. 앞서 엡스틴의 피해자는 ‘트럼프도 조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1996년과 2006년 경찰과 연방수사국에 신고했다고 지난 20일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6년 엡스틴이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되기 전부터 이미 엡스틴과 관계를 끝냈다고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선 기간부터 엡스틴 파일이 공개되면 엘리트들과 민주당 인사들의 부정도 밝혀질 것이라며 당선 후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해왔으며, 트럼프도 이를 지지했다.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장과 댄 번지노 부국장은 앱스틴 파일 공개를 지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엡스틴 사건으로 대통령에게 쏠린 이목을 돌리기 위해 또다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공격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미국 정보 기관을 총괄하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이날 백악관 대변인 언론 브리핑에 나와 오바마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취지로 정보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개버드 국장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열거한 뒤 “우리가 발견하고, 공개한 증거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관련) 정보 평가를 만드는 것을 주도했다고 지목한다”며 해당 자료를 수사 당국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