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프라임(신용도가 낮은 주택대출) 부실에 따른 미국발 금융위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위기가 닥쳐올 하반기엔 은행들이 대출을 확 줄일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몰릴 수밖에 없다.”
올 4월 “하반기 대출 확 줄것”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지난 4월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은 6개월 뒤의 일을 마치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겨레>는 최근 윤 행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해 말까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윤 행장은 대화 내내 어두운 안색이 역력했다. 금융 위기의 본질과 심각성을 의식한 탓인지 간간이 한숨까지 내쉬었다.
윤 행장은 위기의 본질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때는 모두들 위기에 대한 책임을 통감했고, 구조조정 등의 고육지책도 감수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의 위기에 대해선 상당수 국민들은 미국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기가 닥치는 것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태가 정부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책 마련을 더디게 하고, 이것이야말로 눈 뜨고 사지로 빨려 들어가는 진짜 위기라는 것이다. 97년 구제금융 사태 때는 야속하긴 했지만 우리 집 불을 꺼 줄 친구(미국)가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 집에 불이나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윤 행장은 “위기국면이 내년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며 “위기 장기화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달러 및 원화 유동성 공급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중소기업과 가계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긴급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금융권 대출 자산은 850조원(잔액기준)으로 중소기업과 가계부문이 각각 400조원이고 대기업은 50조원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위기 대응책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야 하는지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윤 행장은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빨리 나서 국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시그널(신호)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금융위기이자 실물 경제의 위기이지만 그 저변에는 신뢰의 위기라는 보다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회사와 대기업 모두 돈을 틀어쥐고서 남들이 먼저 나서 줄 것을 바라며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라는 설명이다.
윤 행장은 지난 1일부터 매일 새벽 임원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는 여신운영본부장을 중심으로 금융애로 해소 대책반을 설치해 흑자도산 방지책과 수출기업 지원 방안을 마련했고, 19일부터는 국제금융시장 점검반을 가동해 해외시장 동향을 거래 중소기업에 알려주고 있다.
윤 행장은 기업은행의 개인금융 부문 강화 방침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리먼브러더스 등 미국 대형 투자은행(IB)들의 몰락이나 지난 2003년 옛 엘지(LG)카드 사태는 금융회사가 수신 기반없이 오직 돈장사만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면서 “튼튼한 자금 조달원 없이 안정적인 중소기업 자금지원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상호 기자 byeon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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