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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유동성에도 큰 문제” 경고
“대형 공기업 매각 일정 연기” 주문
국내외 금융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내 대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현재 위기가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경제로 전이된 단계로 진단했다. 특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위기 극복 능력에 대한 금융권의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으며, 정부의 주장과 달리 국내 부동산 거품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가 8일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전제로 대형 시중은행장 등 6명의 금융계 최고경영자에게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처 방안을 물어본 결과, “달러뿐 아니라 원화 유동성도 문제”라거나 “부동산 문제는 이제 손을 댈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등 다급한 상황 인식이 쏟아졌다.
금융계에서 국내외 금융 상황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ㄱ회장은 “금융위기가 이미 실물경제로 전이된 단계이며 이번 위기는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조기 진화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더 큰 위기을 앞두고 살아남기 위해 은행과 대기업들이 정부를 믿지 못한 채 돈만 틀어쥐고 있다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돈 없는 서민과 한계선 상에 있는 중소기업들에로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ㄴ은행장은 “정부와 한은이 금융권의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고 호언해 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며 “지금은 금융회사와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는 바람에 달러 유동성뿐 아니라 원화 유동성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세계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여파로 시중 유동성 증가세는 3개월째 둔화하고 있다. ㄷ은행장도 “금융과 실물의 복합위기”라며 “내년 하반기까지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금융계 최고경영자들의 생각은 정부와 달랐다. ㄷ행장과 한 지방은행장은 “부동산 경기침체는 이제 손을 댈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며 “다만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지방 건설업체 부실과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 처방이 신속히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으로,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와 대규모 기업 매각 작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ㄹ사장은 “대기업들이 막대한 유동성을 준비해야 하는 대우해양조선과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대형 인수합병(M&A) 일정을 연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은행장은 “대기업들이 국외에 보유 중인 외화 자금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등 한국 경제 수장의 금융위기 대처 방식에 대해선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최근강 장관이 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거론한 데 대해 “정부와 중앙은행부터 책임을 지고 총대를 메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위기 때마다 정부 지시를 따랐다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던 지난날의 불신감이 배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최고경영자는 현 위기를 ‘신뢰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를 이끄는 경제 수장의 리더십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국책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정부가 스와프(SWAP) 시장을 통해 100억달러의 외화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결국 원화를 한국은행에 맡기고 달러를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원화 유동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정부 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
변상호 기자 byeonsh@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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